정성희 논설위원
고령화에 대응할 시간 많지 않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한 자신감의 근거는 인구였다. 수문제의 아들 수양제가 고구려를 징벌하기 위해 보낸 백만대군은 18세기까지의 원정군으로는 최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군대의 전술에서 인구가 전부는 아니다. 수나라는 결국 고구려 원정에서 패해 망했다. 인구는 또한 경제력이다. 조선 초기인 1400년대 인구는 약 600만 명이었다. 근대적 인구통계가 시작된 1911년 일제하 한반도 인구는 1405만 명(일본인 21만 명 포함)이었다(조선총독부 통계). 1960년 1인당 79달러이던 국민소득이 경제개발과 함께 급증하던 시기가 베이비붐 시기와 일치한다. 소득수준의 향상, 의술의 발달, 정치적 안정이 이뤄졌다는 증표다.
인구가 늘어나면 국력도 커지지만 혼잡비용이 늘고 환경 파괴가 가중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인구의 질(質)이다. 인구가 늘어난 것은 많이 태어나서가 아니라 장수하기 때문이다. 실록에 따르면 조선 왕의 평균수명은 47세였다. 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여자 83.3세, 남자 77세다. 현대 한국인이 조선 왕보다 30년은 더 살고, 더 잘 먹는다. 요즘 갱년기 증세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데 평균수명이 짧았던 예전에는 갱년기 우울증 같은 질병이 없었다. 갱년기가 되기 전에 대개 죽었으니 갱년기는 유전자에 기록된 ‘죽음의 기억’이라는 해석이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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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 ‘인구 국책’ 내놓아보라
고령화는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다. 고령화에 맞설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도 없다. 우리가 고령화에 특히 취약한 이유는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이 미비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소득수준은 아일랜드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노인의 31.8%(180만 명)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을 받고 있지만 월평균 연금액은 28만 원이다. 이마저도 못 받는 노인이 370만 명이다. 빈곤 질병 외로움 등 삼중고를 이기지 못한 많은 노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장수가 진정 축복이 되려면 개인도 나라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희망이 없지는 않다. 국가적으로 향후 10년간은 인구보너스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인구보너스 기간이란 생산연령층이 많고 피(被)부양층에 대한 부담이 적어 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한 시기다. 차기 정권을 담당하려는 사람들부터 ‘10년의 인구보너스’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국가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