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논설위원
마무리 투수는 언제 닥칠지 모를 등판의 순간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비상 대기조다. 일상(日常)이 위기다. 이들에게 “공 몇 개로 억대 연봉을 챙긴다”고 하는 건 뭘 모르는 얘기다. 오승환은 지난해 말 삼성이 진행한 대학생 대상 토크콘서트 ‘열정樂서’의 연사로 나서 “그 서너 개의 공을 던지기 위해 아침에 눈뜨면 훈련을 시작하고, 경기에 들어갈 때까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상이 된 위기는 우리 경제 현실의 축소판일지 모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상시(常時)위기’ 시대에 들어섰다. 유로존 위기 고조로 하반기(7∼12월)엔 상반기보다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던 낙관론도 쏙 들어갔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올해 국내 경제가 3.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전망치(3.3%)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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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상수(常數)가 된 시대에 오승환식 해법에 눈길이 간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던 2001년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학 1학년 때 팔꿈치 인대를 다쳐 큰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후 2년간 하루 12시간씩 재활과 연습에 매달렸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도 거리 응원을 보고 알았을 정도로 훈련에 몰입했다. 2005년 신인왕을 거머쥐고 2006년까지 2년 연속 우승을 이끈 건 그간의 땀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었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오늘의 오승환을 만들었다.
정상에 섰을 때 일순간 방심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경쟁의 본질이다. 기업 경영에도 일등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승환도 2006년 우승을 이끈 뒤 슬럼프에 빠졌다.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도 경기에선 통타(痛打)를 당했다. 과거와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정신무장을 다시 하고 더 열심히 뛰었다는 것이다.
“프로의 세계는 모든 것이 굉장히 빨리 변하고, 약점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파악되고,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모든 장점이 소용없을 정도로 공격을 당하게 돼 있습니다. ‘저 사람은 큰 노력 없이도 잘한다’고 짐작하는데, 알고 보면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 겁니다.”(오승환)
오승환은 강연에서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자에 ‘나는 행복하다’는 글귀를 쓰고 경기에 나선 것도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인 자세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기록을 달성한 뒤에 “포수와 수비를 믿고 던진 것뿐”이라며 동료들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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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