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활동하던 여음목관오중주단은 1990년대 초 마음속 감동이 오랫동안 남는 연주를 꿈꾸며 ‘여음(餘音)’이라는 이름을 정했다. 왼쪽부터 바순 김형찬, 클라리넷 송정민, 오보에 오선영, 플루트 이지영, 호른 신현석 씨.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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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악단을 창단한 지 올해로 28주년을 맞는다고 하면, 나이 지긋한 연주자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이들은 40대 중반에 불과하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꾸준히 연주활동을 이어온 ‘여음목관오중주단’이다. 금호아트홀의 ‘앙상블 프론티어’ 시리즈로 12일 무대에 서는 이들의 30년 가까운 인연을 들어보았다.
여음 역사의 첫 장에 기록된 장면은 1984년 겨울 서울예고 입학시험장. 당시 입학 심사위원이었던 호른 연주자 신홍균 씨(1994년 작고)는 블라인드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험생들의 연주에 귀를 바짝 기울였다. 합격자 발표가 난 뒤 이듬해 1월 플루트 이지영(43), 클라리넷 송정민(43), 오보에 오선영(44), 바순 이영아 씨(43)가 신 씨의 부름을 받았다. 이들은 그해 2월 신 씨의 자택인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강남맨션 8동 101호에 모였다. 신 씨의 아들이자 이들과 서울예고 입학동기인 호른 연주자 현석 씨(44)도 청일점으로 함께했다. 목관오중주단이 결성된 순간이다. 4년 전 바순 연주자 이 씨가 해외로 떠난 뒤 서울예고 후배인 김형찬 씨(41)가 그 자리를 채웠다.
2일 정동에서 만난 이들은 옛 연주회의 프로그램북을 저마다 챙겨 왔다. 사진에 담긴 지난 시간이 성큼 다가서는 듯했다. “어머머, 80년대 드레스는 어쩌면 이렇게 소매를 많이 부풀렸니?” “나 성형 안 했는데, 지금이 더 예뻐진 것 같아.” “설날 신 선생님 댁에 한복 입고 가서 세배드리고 그 차림으로 연습하는 사진도 있는데 가져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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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악팀으로 음악캠프에서 열흘씩 함께 생활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동행한 신 선생님 코 고는 소리에 현석이가 잠을 못 자 우리 방에 재워주기도 했는데.”(이지영 씨)
“어유, 난 기억 없어.”(신현석 씨)
“아니, 그런 큰일을 기억 못 한단 말이야? 우리가 목욕탕 말고는 다 같이 가봤다고 농담으로 그러잖아.(웃음)”(송정민 씨)
1985년 고교 2학년 여름, 대구 공연 때 일이다. 공연장 건물에 냉방시설이 없어 무대 네 귀퉁이에 대형 얼음을 쌓아놓고 그 뒤에 선풍기를 튼 채 연주를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암흑이 된 상황. 숨소리에만 집중하면서 5분여 동안 호흡을 딱딱 맞춰 연주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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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일체감은 서로의 들숨과 날숨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왜 소리를 같이 내지 않고 앞서 나가느냐” “네 소리만 너무 크다”는 등 숱한 싸움을 학창시절에 마쳤기에 이제는 눈빛만 보고도 척척 맞추고 요구사항을 직설적으로 편하게 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이들의 음악에는 10대의 어린 모습을 지나 40대 중견 연주자로 성장해온 과정이 담겨 있다.
이쯤에서 귀띔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연주회에는 여음의 30년 역사에 없던 아쉬움도 깃들게 된다. KBS교향악단 단원인 신현석, 송정민 씨의 자리를 객원단원이 대신하게 된 것. 다섯 사람은 “어떻게든 잘 해결되어 다음에는 꼭 같이 무대에 서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리게티, 이베르, 바버, 피아졸라의 작품 중 여름에 어울리는 곡을 골랐다. 12일 오후 8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2만∼3만 원, 청소년 8000원. 02-6303-1977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