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과학, 내 솜씨에 뉴요커들 행복
미국 뉴욕에서 한식당 ‘단지’를 운영하는 의대생 출신 셰프 김훈 씨.
여기엔 이 한식당의 셰프(주방장)이자 사장인 김훈 씨(40)의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 있다. 그의 미국 이름은 후니 킴(Hooni Kim). 3세 때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6세 때부터 미국 뉴욕에 정착한 한인교포다.
김 씨가 걸어온 길은 독특하다. 어린 시절 꿈은 요리사가 아니었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코네티컷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사의 흰 가운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그는 요리사의 흰 가운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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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통으로 의대 휴학, 취미인 요리가 직업으로
오후 9시쯤 들어선 ‘단지’ 식당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천장엔 한지 느낌의 한복 천이 촘촘하게 드리워져 조명을 은은히 감쌌다. 메뉴판을 펼치자 익숙한 음식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두부 샐러드, 보쌈, 은대구조림…. 식당은 뉴욕 사람들로 북적였다.
김 씨는 어떻게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됐을까.
“학창시절 과학을 좋아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죠. 막연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의대에 갔어요. 하지만 막상 의학 공부를 하고 병원에서 일해 보니 적성에 안 맞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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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다.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요리는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3개를 받은 세계적 명성의 프랑스 레스토랑 ‘다니엘(Daniel)’에 인턴으로 취직했다. 실력이 쟁쟁한 요리사들과 주방에서 함께 일하던 그는 결국 의대 복귀를 포기했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어머니의 반대는 엄청났다. 거의 1년간 말을 안 했을 정도. 하지만 김 씨에겐 그만큼 ‘요리사는 나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경쟁이 심한 뉴욕에서 성공하려면 정말 자기가 사랑하고 즐기는 일을 해야 해요. 전 그저 그런 의사보다는 누구보다 뛰어난 요리사가 되고 싶었죠. 아침마다 ‘오늘도 200명 남짓한 사람들이 내 음식을 맛보고 기뻐하겠지’라고 생각하면 행복해요. 하루 16시간씩 요리에 몰두해도 즐거운 이유입니다.”
○ 양파 조리하면 부드러워지는 이유? 실험실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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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음식 재료에 열을 가하거나 조미료를 넣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과학실에서의 화학 실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파는 열을 가하면 왜 부드럽게 되는지, 색깔은 왜 변하고 단맛이 생기는지를 김 씨는 대학 실험실에서 배웠다.
의대 재학 시절 병원에서 일하며 사람을 대하던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병원에선 아픈 환자와 보호자들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병이나 치료법을 궁금해 하면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 친절히 설명해주는 태도도 필요하다. 식당 손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잖아요. 저처럼 하고 싶은 일이 도중에 바뀔 수도 있고요. 무엇을 하든 초중고 시절 배운 내용은 다 상식이 됩니다. 아직 꿈이 없다면 오히려 모든 공부를 다 열심히 해봐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겠죠? 기억하세요. 모든 경험은 ‘맛있다’!”
글·사진 뉴욕=장재원 기자 j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