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의 전설’로 美 케이블TV서 돌풍 유재명 대표
‘코라의 전설’ 포스터를 배경으로 활짝 웃는 유재명 대표. 스튜디오 미르 제공
한국 제작사가 기획,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받아든 초유의 성적표였다. 미국 친구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어메이징한(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4월 14일 니켈로디언 채널에서 첫 전파를 탄 ‘코라의 전설(The legend of Korra)’이 첫 주에 거둔 성적이었다. 제작사인 ‘스튜디오 미르’의 유재명 대표 겸 총감독(40)은 이상하게도 눈물 대신 땀이 났다. 기쁨에 과거의 아픔이 겹쳤다.
1989년 겨울,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고3 수험생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의 꿈은 서양화가였다. 어머니가 집을 내놓았다. 집을 보러 온, 당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의 대표적 회사였던 에이콤 간부의 시선이 벽에 붙은 고교생의 그림에 멎었다. 그가 그 자리에서 채용을 제안했다. 얼마 뒤 취업했다.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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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의 전설’은 물, 불, 흙, 공기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4대 종족의 영웅담을 그린 판타지 애니메이션. 이 프로그램을 방영한 니켈로디언은 미국 굴지의 어린이 전문 케이블 채널이다. ‘스펀지 밥’ ‘쿵푸 팬더’ 등을 제작한 대표적 애니메이션 제작사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디즈니에 밀려 업계 1위 자리를 내준 니켈로디언은 야심작이 필요했다. 그때 이 회사 간부가 ‘원더풀 데이즈’(2003년)를 봤다. 유 대표가 ‘키(key) 애니메이터’를 맡았던 작품이다. 그는 작품의 미장센(영상미)에 매혹됐다. 2005년 ‘더 라스트 에어벤더 아바타’의 제작을 주문해 인연을 맺었다. 니켈로디언은 유 대표의 실력을 인정해 ‘코라의 전설’의 스토리 원안을 제외한 전권을 맡겼다.
유 대표의 성공 뒤에는 미국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있었다. 국내 대표적 애니메이션 ‘뽀로로’나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도 미국 시장만은 난공불락이었다. 미국인의 감성 코드를 집중 연구했다. 영웅담의 주인공은 음해를 당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동료 여성의 실수를 감싸주는 신사로 설정했다.
‘코라의 전설’은 23일 누적 시청자 수 3700만 명을 기록하며 13회로 막을 내렸다. 최근 3년간 니켈로디언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회사의 주가는 높아졌지만 유 대표는 요즘 불안하다. 직원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에 애니메이션 학과가 수십 곳이지만 지원자가 많지 않다. 얼마 전 방문한 미국 애니메이션의 산실 캘리포니아예술대(칼아츠)에는 한국 학생이 넘쳐났다. 그는 “이들이 현장보다 학위만을 좇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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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