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혜영 씨 이번에도 기괴한 소설 ‘서쪽 숲에 갔다’ 펴내
편혜영의 소설은 기괴하고 불편하다. 그런 공포와 불편함은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에 더 섬뜩하다. 잊고 지냈던, 짐짓 모른 체했던 현실의 잔혹함을 소설이란 상자에 담아 독자 앞에 툭 던져놓는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하지만 26일 서울 광화문의 카페에서 만난 그의 목소리는 높고 발랄하며 경쾌했다. ‘언제 내가 그런 기괴한 작품을 썼느냐’며 시치미를 떼는 듯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를 들고 왔는데, 그 소설 또한 기괴하고 불편했다.
‘재와 빨강’ ‘아오이 가든’ 등 앞선 그의 작품들에서는 익숙했던 공간들이 돌연 공포로 다가오고, 심한 악취와 잔인한 폭력이 책장을 뒤덮는다. 인물들은 낯선 공간에서 헤매고 절망한다. 이른바 하드고어나 엽기와 친숙한 그는 ‘불편, 불쾌, 불능의 작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숲이나 나무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정해진 산책로를 살짝 벗어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겉으로는 친숙해 보이지만 조금 달리 보면 불안한 대상이죠.”
거대한 숲에 둘러싸인 외진 마을. 숲의 관리인으로 일하던 이경인이 실종되자 동생인 변호사 이하인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이하인이 만나는 사람들은 형의 존재를 모르거나 모른 체한다. 점점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던 이하인은 돌연 교통사고로 숨진다.
초반은 전형적인 탐정물. 하지만 이하인이 사망하면서 작품은 추리물 공식을 벗어난다. 긴장감을 높이며 몰입했던 독자들은 허탈할 수도 있다. 작가는 왜 주인공을 초반에 죽이며 독자의 기대를 배신했을까.
“사건의 인과를 단선적으로 보여줬으면 장르 소설에 가깝게 됐겠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죠.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여러 사건이 겹쳐야 하거든요. 소설이 지나치게 인과관계에 몰입해 사건을 단순화할 수는 없죠.”
2000년 등단해 소설집 세 권, 장편 한 권으로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이제 문단의 중심에 선 편혜영도 어느새 마흔이다. 나이가 들면 대개 사람은 순해진다. 뒤늦게 동화나 동시를 시작하는 작가도 있다. 동화 얘기를 꺼내니 “제가 동화를 쓰면 섬뜩하지 않겠느냐”며 깔깔 웃었다.
“첫 소설집인 ‘아오이 가든’을 쓸 때는 서사보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글로 풀어내는 게 즐거웠어요. 저를 얘기할 때 그로테스크나 하드고어란 말이 많이 나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작품도 변하겠죠. 한 번에는 아니고 비슷하게, 교집합은 남겨둔 채로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