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시조새 등 ‘진화의 예’만 수정
출판사들이 시조새와 말의 화석 변화를 포함한 ‘진화의 예’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 자체가 삭제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예를 사용할 것인지는 출판사의 선택이지만 진화론을 빼는 것은 출판사가 함부로 약속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출판사가 수정한 교과서는 법에 정해진 인정 심의 절차를 거쳐야만 교과서로 인정받게 된다.
2009년 개정 때 개편된 고교 1학년용 과학에서는 어려운 과학 개념이나 이론의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문과와 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에게 현대과학을 개괄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을 개발했던 기초과학과 과학교육 분야 6개 학술단체가 교과부의 요청으로 2010년 제작했던 ‘모델 교과서’는 그런 취지를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화석 기록이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화석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출판사들이 수정에 동의한 것은 현재 교과서의 설명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당초 교육과정의 의도를 넘어설 정도로 지나친 설명도 적절하게 줄이겠다는 뜻이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에서부터 소개된 시조새와 말의 예는 그동안 진화학계가 이룩한 중요한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교과서 발행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었고 진화학자들도 고교 교과서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던 탓이다.
과학 교과서의 발행 제도가 달라졌다. 과학기술한림원과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기초과학학회연합체 등 13개 과학기술단체의 요청으로 시도교육감이 운영하는 인정제도가 도입됐다. 새 제도에서는 교과부가 과거처럼 교과서의 내용에 시시콜콜 간섭할 수 없다. 물론 새로운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번처럼 위험스러운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과학기술계가 교과서의 획일화와 하향평준화를 초래했던 제도로 지적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경직된 검정제도에서는 당연히 필요했던 내용의 수정도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시조새와 말의 화석에 대한 설명을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은 새로운 제도의 긍정적인 성과다.
진화론 자체를 빼는 건 아냐
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