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중 8명이 빚내서 가게 운영… 평균 부채 1억1364만원
25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고깃집 사장 한모 씨가 텅 빈 가게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씨는 지난해 사채로 1300만 원을 빌리고 타던 차도 처분했지만 아직도 빚이 2억 원이나 남아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자영업자 10명 중 8명 “빚 있어”
강도 높은 노동과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는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억대 채무와 이자에 시달리며 삼중고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출을 받아 가게를 열었는데 장사가 잘돼 부채를 갚는 경우도 있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다 사채까지 쓰면서 빚만 불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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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취재팀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만난 고깃집 사장 한모 씨(57) 역시 빚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2001년 호프집을 열었던 그는 2002년 월드컵 특수로 한때 호황을 누렸다. 그 바람을 타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165m²(약 50평)짜리 순댓국집도 열었지만 입지 선정을 잘 못해 손님이 들지 않아 개업 10개월 만에 4억 원을 까먹었다. 사업을 정리한 뒤 다시 2009년 강서구 화곡동에 호프집을 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원재료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되자 카드 빚을 내고 빚을 막기 위해 카드 돌려 막기를 하면서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한 씨는 “지난해 사채로 약 1300만 원을 끌어 쓰면서 빚이 2억 원이 됐다”며 “올해 2월에는 자동차까지 처분했는데도 돈을 다 갚지 못해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 망하면 일용직·노점상 전전
빚에 허덕이다가 가게를 접어도 자영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자영업자는 회사원과 달리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수당이 없어 재기할 발판도 없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올해 1월부터 자영업자도 폐업을 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했지만 25일 현재 가입자는 가입 대상자(350여만 명)의 0.27%인 9489명에 불과하다. 형편이 빠듯해 달마다 고용보험료(기준 보수에 따라 3만4650∼5만1970원)를 내기 어렵고 조건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은 사업 개시일부터 6개월 내에 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폐업으로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최소 1년간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여력이 있으면 다시 빚을 내 재창업을 하지만 돈을 조달할 방법이 없으면 일용직이나 노점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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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장님들은 일용직 일터를 주선해 주는 인력사무소나 대리운전업체도 수시로 찾는다. 자영업자들이 자주 찾는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오는 사람의 3분의 1은 자영업을 하다 문을 닫았거나, 사채를 쓰다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 못하는 전직 사장님들”이라고 말했다. 한 대리운전업체 관계자도 “가게를 냈다가 망해서 보증금 날리고 오는 자영업자도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의 부채 문제를 방치할 경우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불안 요소까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두 소상공인진흥원 원장은 “자영업자 부채가 감당할 만한 수준을 넘고,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면 사회 불안 요인이 된다”며 “정부가 서둘러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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