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독일과 그리스의 8강전이 열린 폴란드 그단스크의 PGE 아레나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승 제물이 된 폴란드의 예지 엥겔 전 감독을 만났다. 유럽축구연맹(UEFA) 기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엥겔 전 감독은 10년 전을 떠올리며 “한국을 너무 얕봤다. 포르투갈을 강호로 생각했고 한국과 미국은 잡을 수 있다고 봤는데…. 그게 축구 아닌가”라며 웃었다. 그는 한국의 4강 신화를 기억하며 이번 대회 공동 개최국으로서 폴란드가 8강에 들지 못한 것에 “가슴 아프다. 하지만 최강 팀들의 멋진 경기를 볼 수 있어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유로2012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모든 팀이 ‘스페인 따라하기’와 ‘타도 스페인’을 함께 외치고 있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팀이 미드필드부터 짧은 패스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며 점유율을 높이는 스페인 식 패싱플레이를 시도하고 있다.
이날 과거 힘을 바탕으로 투박한 플레이를 펼치던 독일의 플레이가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주트 외칠(레알 마드리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바이에른 뮌헨) 등 개인기가 좋은 미드필더들이 짧은 패스로 풀어나가는 플레이에서 스페인 축구의 냄새가 났다. 다소 딱딱하다고 느꼈던 독일 축구가 부드러움까지 갖춰 훨씬 강한 ‘전차군단’이 됐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세밀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중앙 돌파, 좌우 돌파에 이은 크로스, 독일은 그리스를 초토화시키고 가볍게 4강에 합류했다. 독일과 스페인이 결승에서 만난다면 참 볼만한 경기가 될 것이다.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4강 대결이 이번 대회 최고의 빅 매치가 될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나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파괴력이 있는 공격수가 버틴 포르투갈이 미드필드부터 강력한 압박을 하며 전광석화같이 역습할 때 스페인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심사다. 스페인은 다소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포르투갈은 ‘타도 스페인’을 외치는 최선봉에 있다. 그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단스크(폴란드)에서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