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덩굴
담쟁이덩굴의 잎은 땅을 기거나 물체를 올라타고 나서 얼마 동안은 유년성으로 유지되다가 이후 성년성이 된다. 유년성 잎(위사진 왼쪽)과 성년성 잎(위사진 오른쪽).
○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나무들
봄철 식물은 우리에게 꽃으로 다가온다. 여름철 식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나무그늘이 먼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느티나무 그늘이 으뜸일 것이다. 느티나무 그늘은 여름의 축복이다. 수령이 50년만 되어도 돗자리 대여섯 개는 충분히 감당할 만한 풍성한 그림자를 만들어 준다.
담쟁이덩굴처럼 건물을 덮어서 냉방효과를 내 주는 경우도 있다. 특히 벽돌이나 석재로 외장을 한 건물은 여름철 햇빛 때문에 표면은 물론 실내온도도 많이 상승한다. 이런 건물을 담쟁이덩굴로 감싸면 상당한 냉방비 절감효과가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늦가을부터는 예쁜 진홍빛 단풍잎을 떨어뜨려 겨울철 햇살이 건물에 닿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장점이 있다. 사철 잎이 붙어있는 늘푸른 덩굴식물과는 다르게 말이다.
담쟁이덩굴의 잎은 어릴 때(또는 땅을 기면서 자랄 때)와 건물 벽을 타고 자랄 때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유년성(幼年性) 잎과 성년성(成年性) 잎의 모양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씨앗에서 싹이 튼 후 일정기간 동안은 유년성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몸을 키우는 데 열중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생물의 궁극적 목표인 종족보존을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덩굴식물은 나이에 상관없이 다른 물체를 타고 올라가기 전까지는 유년성을 유지한다. 이들은 물체를 타고 오르는 것을 ‘결혼의식’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주변의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을 관찰해 보자. 밑 부분에서는 작은 세 개의 잎이 모여서 된 유년성 잎을 볼 수 있다. 좀 더 위로 올려다보면 곰발바닥처럼 둥근 모양에 잎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성년성 잎이 보일 것이다.(사진 참조)
○ 유년과 성년 때 잎 모양 달라져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동북부의 아이비리그를 상징하는 아이비(Ivy)가 서양 아이비(English Ivy·서양송악)가 아니라 동북아시아(한국 중국 일본)에 자생하는 담쟁이덩굴(Boston Ivy)이란 점이다. 하기야 추위에 약한 늘푸른 서양 아이비가 미국 동북부의 혹한을 견딜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보다는 추위에 강한 잎떨기 나무인 담쟁이덩굴이 제격일 것이다.
유년성과 성년성은 많은 덩굴식물(아이비와 그 친척인 한국산 송악, 인동)과 향나무, 중국단풍나무 등 많은 나무식물에서 나타난다. 어린잎은 보통 가장자리가 깊게 갈라지고 성년성 잎은 전체적으로 둥글게 변한다. 향나무의 어린잎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매서운 느낌이 들 정도다. 사실 많은 과일나무들도 씨앗에서 싹이 튼 후 꽃이 필 정도로 자랄 때까지 개체의 생존에 전념하는 유년성을 유지한다. 잎 모양의 변화가 크게 눈이 띄지 않을 뿐이다. 꺾꽂이나 조직배양과 같은 몸떼기 번식을 할 때는 유년성 잎이나 줄기를 이용한다.
여기서 교훈을 한 가지 얻어 보자. 과일나무나 토마토 같은 과일채소를 기르다 보면 간혹 애늙은 묘목이나 포기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는 욕심 부리지 말고 과감하게 꽃을 따주어야 한다. 어릴 때는 스트레스 없이 잘 먹고 잘 자라는 데만 전념해야 하는 것은 식물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서정남 농학박사(농림수산식품부 국립종자원) suhjn@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