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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서양의학은 암을 치료한 적이 없다

입력 | 2012-06-16 03:00:00

◇질병의 종말/데이비드 아구스 지음·김영설 옮김
384쪽·1만7000원·청림Life




인체 내에서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는 모습. T세포는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비정상 세포 활동으로 생긴 암세포를 먹는 면역 기능의 주력군이다. 청림Life 제공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저자는 그의 말기 췌장암 치료에 참여한 주치의 중 하나였다. 그는 “게임의 막판에, 뒤늦게 발견한 진행된 암 치료를 위해서 의사를 찾아온다면 게임은 곧 끝나고 만다. 나는 진행된 암은 치료할 수 없는 종양학자다”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20년간 암 전문의와 연구자로 이름을 날려 온 저자이지만 이 책은 암 치료법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현대 서구의학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패러다임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2009년 덴버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우리는 지난 50년간 암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우리는 실수를 해왔다”고 발언해 파란을 일으켰다. 1950년부터 2007년까지 심장병, 뇌중풍(뇌졸중), 폐렴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60∼70%까지 줄어들었지만, 의료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에 의한 사망률은 8%밖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저자는 그 이유를 20세기 서구의학이 맹신해온 ‘질병 감염설’에서 찾았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침입한 감염원(세균, 바이러스)에서 찾을 뿐, 감염이 일어난 장소(인체)는 생각하지 않는 자세다. 암 역시 침입자처럼 다뤄져 잘라내거나 독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치료돼 왔다.

그러나 ‘암은 감염성 질환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암은 우리 몸의 내부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던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돌연변이 세포인 종양이 자기증식하는 것이지 외부의 침입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암이 현대 산업사회의 공해와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환경독성물질과 관계가 있다는 말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기원전 3000년∼기원전 1500년에 기록된 7개의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암 증상이 기록돼 있듯 암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만병의 황제’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암과 같은 병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우리는 암을 결코 치료한 적도 없다. 몸과 병의 관계를 새로운 복잡계로 바라봐야 한다. 종양 자체도 간, 심장, 폐처럼 우리 시스템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몸을 복잡계로 모델화하면, 곧 우리 몸의 기본 요소들을 모두 이해할 필요 없이 조절한다면, 언젠가는 ‘마법의 탄환’을 실제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암과 싸워 이기기보다는 암을 예방하고 조기 진단함으로써 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유전자학과 단백질체학 기술을 활용한 개인형 맞춤치료다.

그는 최첨단 컴퓨터 기술로 단백질 세포의 미세한 신호를 분석해 일기예보처럼 개인의 몸 상태를 진단해내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는 이를 위해 ‘어플라이드 프로테오믹스’와 ‘내비제닉스’라는 의료기술 회사를 설립했고, 자신의 실제 유전자(DNA) 프로필을 책 속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종합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통해 인간이 질병 없이 장수하다가 스위치를 내리듯 죽음을 맞는 ‘질병의 종말’의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본다.

이 책은 숱한 의료계의 논란 속에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10주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새롭지 않게 읽힌다. ‘몸과 병을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동양의학에선 질병을 없애는 데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질병이 생겨난 몸을 제대로 살펴 양생(養生)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몸이다”(신토불이) “개인의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해야 한다”(사상의학)는 말도 분명 우리는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