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방북때 특전 누려… 내막 공개하면 어쩔텐가”정몽준-김문수 방북도 언급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1일 공개질문장을 통해 “현 청와대와 행정부 새누리당 안에도 우리와 내적으로 연계를 가진 인물들이 수두룩한데 종북을 떠들 체면이 있는가”라며 “박근혜만 봐도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장군님을 접견하고 주체사상탑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등을 참관하면서 ‘친북발언’을 적지 않게 했다”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또 “정몽준, 김문수 등이 우리에게 와서 한 말을 모두 공개하면 남조선 사람들이 까무러치게 될 것”이라며 “필요하면 남측의 전현직 당국자들과 국회의원들이 평양에 와서 한 모든 일과 행적, 발언들을 공개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 [채널A 영상]북한 “박근혜도 종북이냐”
우리민족끼리는 10일에도 ‘종북세력 척결 소동의 저의를 밝힌다’ 기사에서 “우리와 통일을 논의한 사람들이 다 종북이라면 지난 시기 특사를 보내 우리와 합의하고 혁명 성지를 돌아본 남조선의 역대 집권자들도 응당 종북세력”이라며 “현 정권과 새누리당 안에도 그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보수패당의 논법대로라면 보수층 내에만 봐도 종북 아닌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 “朴-鄭-金 방북발언 다 까면 南 까무러쳐” 北, 종북이슈 물타기 ▼
역대 정권마다 주요 정치인들은 남북교류와 관계개선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북측이 안내한 ‘성역’을 방문하고 북측 인사들에게 ‘덕담’을 건넸을 수도 있다. 이를 빌미로 북한은 방북했던 모든 한국 정치인은 종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들이댄 것이다. 이는 19대 국회에 진출한 일부 야권 의원이 종북이라고 의심받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대북관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까지 끌어들여 자연스레 종북 논란의 초점을 흐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은 공교롭게도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당의 논리와 맥락을 같이한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3일 “박 전 위원장은 2002년 방북 당시 왜 만경대에 갔고 왜 주체사상탑을 방문하였는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 박 전 위원장은 방북기에 ‘북한노래인 휘파람이 한국에서 유행이라고 했더니 북한 여성 몇 명이 이 노래를 열창했다’는 등 북을 찬양 고무하는 내용의 주장도 했다”고 공격한 바 있다.
통진당 노회찬 의원은 11일 CBS 라디오에 나와 “원조 종북이라면 새누리당 박 전 위원장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남로당 핵심당원으로 가입한 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고, 1949년에 군에서 파면된 사람 아니냐”고 공격했다. 조평통도 이날 “유신독재자(박 전 대통령)가 중앙정보부장 리후락(이후락)을 평양에 밀사로 파견해 우리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다 받아들이고 7·4공동성명에 도장을 찍은 것은 종북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야당과 같은 주장을 내놓는 것은 이번 논란에 대한 북한의 의도를 보여준다. 뜻하지 않은 종북 논란으로 상황이 불리해진 야당이 ‘색깔론’으로 이를 돌파하려 하자 북한이 이러한 야당의 논리를 지원하고 나선 셈이다. 종북 논란으로 통진당의 위기가 민주당까지 옮겨가며 대선구도에서 야권 전체가 흔들리는 데 대해 북한이 초조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최근 한국의 주요 선거 때마다 북한은 다양한 형태로 선거개입을 시도했지만 선거결과에는 거의 영향이 없었거나 그 의도와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다”며 “이번에도 북한의 이런 개입 시도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