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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주성하]누구를 위한 북한인권法인가

입력 | 2012-06-07 03:00:00


주성하 국제부 기자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을 5년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2004년 제정된 이 법은 2008년에 한 번 연장된 뒤 이번에 또 한 번 연장됐다.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이 두 번 폐기되고 최근 3번째로 발의된 것과는 비교된다. 하지만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상징적 차원을 넘어 8년간 어떤 실질적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따져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북한인권법 채택 이후 미국이 받아들인 탈북자는 지난달 중순까지 불과 129명. 매년 평균 20명도 안 되는 셈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5월 중순까지 8개월 동안 북한인권법에 따라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고작 5명이다. 미국은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지만 정작 탈북자에 대해서는 적대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로 까다로운 난민승인 심사를 벌여 절차가 수년씩 걸리기 예사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 가려다 포기하고 한국에 온 탈북자가 허다하다. 한국은 2004년 이후 1만7000명이 넘는 탈북자를 받아들였다.

미국이 북한인권법에 따라 매년 2400만 달러씩 책정한 예산이 과연 몇 %나 쓰였는지, 북한인권특사가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200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일본 역시 뭘 했다고 내세울 만한 게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 떠들썩하게 북한인권법이 통과될 때 큰 기대를 가졌던 탈북자들이지만 아직도 그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최근 새누리당의 몇몇 의원이 발의한 북한인권법도 미국과 일본의 전례를 참고해야 한다. 외교통상부에 북한인권대사를 만들면, 혹은 통일부 장관이 북한인권 기본계획을 세우면 북한의 열악한 인권이 얼마나 개선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에 대응해 민주통합당은 교류 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사실 해법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새누리당도 교류 협력과 인도적 지원은 반대하지 않는다. 민주당 인사들도 북한인권의 심각성에 대해선 공감한다. 그러면 두 당이 서로 타협해서 뺄 건 빼고, 보충할 건 보충해서 교류 협력과 인도적 지원도 하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하는 법안을 만들면 되는 일이다. 타협 없이 내 것만 옳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쟁에 국민은 질렸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북한인권법 찬성 여부를 종북 검증의 잣대로 삼으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더구나 납득할 수 없다. 과거 한나라당이 북한인권법 통과에 팔짱을 끼고 있었던 사실을 국민은 망각하지 않았다.

북한인권법 제정 못지않게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만 제대로 운영돼도 북한 인권침해의 가해자들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북한 인권침해 사례를 최초로 기록하기 시작한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연구원들은 9년째 박봉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엄청난 자료를 축적해 놓았다. 솔직히 이런 활동을 북한인권법이 없어서 지원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국회에서 법안 하나가 통과된다고 북한인권이 갑자기 좋아질 순 없다. 정부와 민간의 의지와 다각적이고 꾸준한 실천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미국의 대통령은 여러 번 탈북자들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남쪽에 온 탈북자가 2만4000명에 이르는 동안 그들을 만나 가슴 아픈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대통령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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