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 차장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은 요즘 생각이 복잡하다고 했다. 사회 양극화에 따른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수긍하지만 시장경제 발전에 경쟁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터라 딜레마를 느낀다는 고백이다.
요즘 정부와 정치권이 골목상권의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제조업에 적용하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를 유통업 등 서비스업 분야로 확대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도소매, 음식·숙박업종에 진입하는 걸 막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모두 영세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대기업이 넘을 수 없게 장벽을 쌓는 정책들이다. 무분별하게 점포를 확장한 대형 유통업체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시장경제의 기초 동력인 경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을 장악한 대형 유통업체들이 골목상권에 진출할 때 가장 큰 위험은 자영업자의 피해가 아니라 독점에 따른 경쟁 약화다. 업종은 달라도 같은 회사 계열인 유통업체들이 지역상권을 장악하면 담합을 통한 가격인상 등 반(反)시장적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서 백화점 대형마트 SSM 편의점 등 다양한 판매채널을 전혀 다른 기업이 운영한다면 얘기는 다르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져 소비자들은 싼값에 좋은 제품을 살 기회가 늘어난다. 자영업자의 피해가 있더라도 자영업체보다 처우가 나은 ‘양질의 일자리(decent job)’가 늘어나는 효과를 포함해 사회 전체가 얻는 이익은 더 클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일정 수준 이상 자본과 연구개발(R&D) 능력을 갖춘 중견기업의 진입을 촉진해 기존 대형 유통업체와 경합시켜 ‘유효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맞는 정책이다. 급성장하는 인터넷쇼핑몰의 활성화를 통해 견제하는 것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요즘 TV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끊임없이 스타를 양산한다. 그 과정은 경쟁의 연속이다. 열심히 노래한 사람을 탈락시키는 게 잔인하다고 이런 프로그램을 모두 폐지한다면 최고의 가창력을 갖춘 신인 가수의 노래를 들을 기회는 사라진다. 골목상권을 보는 시각이 이와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