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이른바 진보, 내부개혁 기회 놓쳐
진보 진영이 스스로를 쇄신할 기회는 2007년에도 있었다. 선거마다 참패하면서 진보 진영은 대통령선거의 패배를 직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무능과 비개혁 때문에 실패했으며 특단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희망제작소 세교연구소 좋은정책포럼 등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들이 이때를 전후해 결성됐다. 진보 진영에 대해 쏟아졌던 “비판만 할 줄 알지 대안이 없다” “경제에 무능하다”는 질책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이었다.
민주노동당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2007년 대선에서 민노당 후보로 나선 권영길 씨는 3.01%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심상정 노회찬 씨 등 민노당 내 이른바 ‘평등파’들은 2008년 3월 민노당을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심상정 씨는 “현재 민노당의 틀로는 대한민국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는 진보정치의 희망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민노당의 틀’이란 주사파가 장악한 종북(從北) 정당을 의미했다. 심 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단하고 건실한 살림집을 세워올리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종북과의 결별은 진보 진영에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시작된 광우병 촛불집회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진보 진영은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의 함성을 들으며 재집권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진보연대에서 발견된 2008년 6월 17일자 문건은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이명박 정부를 주저앉히는 것. 단기간에 정치적으로 쟁취하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이들의 전문 영역은 원래 투쟁이고 시위였다. MBC ‘PD수첩’의 왜곡 보도와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에서 촉발된 촛불집회를 반정부 시위로 변질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보의 ‘내공’을 쌓는 일 따위는 더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좌우 진영 극한 대립만 심화
돌이켜보면 진보 진영에 촛불집회는 당장은 달콤했으나 스스로를 해치는 독(毒)에 지나지 않았다. 서민의 삶을 위해 현실적 대안을 모색한다던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들은 요즘 존재감이 없다. 그동안 반(反)이명박 정서에만 의존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 이념 투쟁에 매달려 왔으니 특별한 역할이 없었을 듯하다. 종북과 결별을 선언했던 심상정 씨는 세를 불리기 위해 민노당과 다시 손을 잡고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그 결과 통진당의 종북 색채를 다시 희석시키는 데 일조를 했을 뿐이다. 반이명박 정서 덕분에 진보 진영의 국회의원 의석이나 지방권력은 늘어났으나 노무현 정권 때부터 지적됐던 역량의 한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5월이 찾아오고 마침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그때 그 세력들이 주최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으나 참석자는 1000여 명에 불과했다. 4년 뒤 시민들은 냉담했다. 총선 패배 이후 통진당의 부정 경선이 드러나면서 진보 진영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단단하고 건실한 살림집을 세워 올리는’ 자세가 진보 진영에 필요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