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속 어른들 산소 찾다가… 40년간 한국 방방곡곡 누벼
1960년대 말 우연히 한국을 여행한 것을 계기로 40여 년간 한국사회를 연구해온 시마 무쓰히코 교수는 당시 방문이 ‘인생을 바꾼 여행’이었다며 뿌듯해했다. 성남=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는 재미난 연구 주제가 무궁무진하게 눈에 띈다’고 말하는 시마 교수를 1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났다. 그는 2010년 일본 도호쿠대 문학부를 정년퇴임하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를 거쳐 지난해 가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펠로로 문화인류학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1969년 도쿄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그는 격렬한 학생운동으로 학사가 마비돼 대학원 진학을 미루고 있었다. 마침 은사의 권유로 유네스코에서 후원하는 한일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해 그해 여름 보름간 한국을 여행했다. “시골에서 소를 끌고 가는 농부, 흰 옷을 입고 머리에 짐을 이고 가는 아주머니의 평화롭고 소박한 농촌 풍경에 반해 한국을 인류학적으로 연구하기로 마음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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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연구 결과를 담은 박사논문 ‘한 한국 마을의 친족과 경제 조직’을 단행본으로 출간 준비 중이다. 1970년대 농촌생활에 대한 역사적 기록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320여 명이 모여 살았던 이 마을을 최근 다시 찾으니 인구가 30여 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마저 혼자 사는 노인들이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실감했죠.”
시마 교수가 족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 현지 조사를 하기 위해 경북 성주군의 한 마을에 머물면서다. 그가 하숙하던 종갓집의 할아버지가 가문의 족보 십수 권을 보여줬다. 그때 이 집 손자가 “종손 노릇하려면 조상들의 산소에 모두 직접 가봐야 한다”고 한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족보에 기록된 조상들의 산소를 쭉 따라갔다. 그렇게 전국을 돌며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니 거꾸로 시조의 자손들이 각지로 흩어지는 과정을 그릴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씨족제도의 발전 양상을 추적하는 실마리가 됐다.
이농현상이 빠르게 진행돼 자연스럽게 도시화를 연구하게 된 그는 1990년대 말 대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청년 시절 하숙했던 성주 종갓집 식구를 우연히 만났다. “명색이 종갓집 며느리가 아파트 단지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고 있더군요. 깜짝 놀랐어요. 과연 노점상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죠.” 이후 노점상 현지조사에 뛰어들어 ‘아파트 단지의 노점상은 하층계급이 아니라 중산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파트 단지 노점상의 60%가 해당 아파트 단지의 거주민이었어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실직한 사람들이 대거 자영업에 뛰어든 결과였죠.”
대학에선 이미 은퇴했지만 그는 “한국 농촌의 계책 분석, 농촌 여성의 대화 분석 등 앞으로 할 연구가 많이 남아 있다”며 식지 않는 열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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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96년 일본 히로시마(廣島)대 종합과학부 교수 △1996∼2010년 일본 도호쿠(東北)대 문학부 교수 △2010년∼현재 도호쿠대 명예교수 △2010∼2011년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2011년 10월∼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펠로
성남=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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