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도쿄 특파원
B 사장은 일본에서 인기를 누리다 2008년 농약 성분이 검출돼 된서리를 맞은 중국산 만두 파동을 떠올렸다. 그는 한국인들이 ‘폭탄’을 껴안고 산다고 했다. 한류가 뜨면서 한국 음식점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호황을 맞고 있지만 어느 순간 한류가 꺼지면 일제히 길거리로 나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C 사장이 엉뚱한 낙관론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적어도 음식 한류는 꺼질 수 없다. 일단 자극이 강한 한국 음식에 인이 박이면 도저히 끊을 수 없다.”
자리는 싱겁게 끝났지만 일본에서 바라보는 한류는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위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한류가 ‘범람’하다 못해 ‘소모’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18일 만난 일본 민영방송사의 한 임원은 “TV 채널을 돌리면 여기도 한류 드라마 저기도 한류 드라마다. 한류 거리에는 케이팝 가수 공연이 넘쳐난다. 한류가 과잉 공급되면서 몸값도 떨어지고 일본인들도 점점 식상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케이팝 공연에 자리를 못 채워 공짜표가 돌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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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최근 비(非)문화 부처까지 가세한 한국 정부 부처들의 ‘한류 올라타기’ 경쟁은 걱정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부처 간 과당경쟁 속에 한류가 한국 정부의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문화 프로파간다(선전 선동)’로 인식되는 순간, 한류 팬 사이에서도 경계감이 확산되고 양국 외교관계 등 정치적 변동성에 따라 한류의 인기도 출렁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류의 지속 가능성이 훼손된다는 의미다.
한류 개척자 중 한 명인 박진영 JYP 프로듀서는 작년 SBS ‘일요일이 좋다-서바이벌 오디션 K팝 스타’ 기자간담회에서 혐한에 대해 언급하면서 “문화예술 종사자의 역할은 정치, 역사의 대립각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가 정치와는 독립된 생명력을 지닐 때 역설적으로 정부의 정치 외교적 목표에 전략적 플러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부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가 한국인의 큰 사랑을 받은 것은 한글과 순두부 등 한국문화와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마음과 행동으로 진정성 있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한류 성공의 출발점도 정부 주도의 한류스타 초청행사가 아니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