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 ★★★★
무거운 이야기를 경쾌하게 풀어내 재미와 감동을 낚아 올린 창작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 박복녀 할머니(이봉련·가운데)가 불청객인 지화자 할머니(김효숙·왼쪽)를 꾸짖자 암탉인 꼬(문민형)가 눈치를 보고 있다. MJ플래닛 제공
대구 외곽 그린벨트 지역의 팔현마을에서 개(몽), 고양이(냥), 닭(꼬)을 키우며 혼자 사는 박복녀 할머니. 어느 날 그의 집에 지화자라는 할머니가 무작정 찾아와 자기 아들 집이라고 우긴다. 아들이 부친 편지의 발신 주소가 이곳이라는 것. 두 사람은 “내 집에서 나가라” “아들 보기 전엔 못 나간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지만 다음 날 함께 지화자의 아들을 찾아 나선다. 동사무소, 우체국, 휴대전화 판매점, 경찰서, 사진관을 차례로 돌며 아들을 찾다 정이 생긴 박 씨는 오갈 데 없는 지 씨를 식구로 받아들이지만 지 씨가 무심코 박 씨의 과거 상처를 건드리는 바람에 두 사람은 다시 갈라선다.
작품의 바탕에는 홀몸노인, 현대판 고려장 등 무거운 사회 현실이 깔려 있지만 극은 전반적으로 경쾌하고 흥겹다.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를 한껏 살린 할머니들의 사실적 대사들도 한몫을 하지만 버려진 동물 삼총사 몽, 냥, 꼬의 역할이 가장 크다. 중국집에서 사랑받다가 개장수의 꼬임에 넘어가 도살장으로 향하던 중 탈출한 몽, 귀족처럼 대우받다 버려진 냥 등 각각 사연 있는 이들은 앙증맞은 율동에 요즘 젊은 세대의 감수성이 톡톡 튀는 노래로 객석의 웃음을 책임진다. “아, 우리의 슬픈 운명/이 세상에 알로 태어나 삐약삐약 병아리 되기 전에/보건복지부선정 킹왕짱완전식품/냉면쫄면막국수 위에 계란 반쪽 … 우리 삶은, 삶은 계란/우리 삶은, 닭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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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두 할머니의 갈등이 해소되고 맞는 마지막 장면은 수채화처럼 맑고 봄 햇살처럼 따뜻했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아픔을 치유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줄 아는 여성적 지혜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뮤지컬이다.
:: i :: 지난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뮤지컬상 수상작. 두 팀이 번갈아 공연한다. 6월 24일까지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4만 원. 02-2278-5741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