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족은 그 자체로 위험…‘관계’를 맺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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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리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에겐 사람만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돈을 버는 것도, 권력을 쟁취하는 것도 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외로움과 고립감만큼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일도 없다. 그래서 그토록 가족에 집착하는 것이리라. 헌데,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심화될수록 점점 더 솔로가 늘어난다. 미혼에 비혼, 이혼에 홀몸노인 등 일인 가족의 유형도 점점 다양화되고 있다.
일인 가족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일인 가족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경제나 신변의 문제를 떠나 생명력 차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특히 혼자서 먹는 밥은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치명적이다. 그리고 의식주의 윤택함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거의 다 잉여가 된다. 즉 더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건 ‘관계’다. 주고받는 말, 함께 하는 행동, 어제와 다른 사고방식, 이 삼박자의 리듬이 있어야 ‘정기신’이 살아 움직인다. 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어떻게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어느 정도 생계유지가 가능하다. 그래서 점점 더 고립의 길을 자초하게 된다. 이것도 참 시대적 역설이다.
멜로와 시트콤의 차이는? 멜로는 순수한 가족삼각형을 지향하고, 시트콤은 ‘콩가루 집안’에서 시작한다. 헌데 전자에선 그것이 비극의 원천이고, 후자에선 유쾌발랄한 서사의 원동력이 된다. 그 원조격인 만화 ‘아기공룡 둘리’를 떠올리면 된다. 둘리네 집은 외계인에 동물까지 그야말로 타자들의 아수라장이다. 그래서 늘 활력이 넘친다. 솔로들에게 다시 핵가족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건 무의미하다. 오히려 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서로 간의 다양한 ‘이합집산’이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공동주택의 활성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컨대 혈연을 넘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뒤섞일 수 있는 ‘일상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것. 가족이면서도 가족이 아닌, 그래서 아주 새로운 ‘타자들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우리 몸이 본디 그러한 것처럼.
고미숙 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