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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절규’

입력 | 2012-05-04 03:00:00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거리와 피오르(협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쪽으로 태양이 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돌연 피처럼 붉게 물들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초조해져서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난간에 기댔으며, 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처럼 검푸른 피오르와 거리 위로 낮게 깔린 불타는 듯한 구름을 바라보았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대기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습니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명화 ‘절규’를 제작하기 전에 남긴 일기의 한 대목이다. ‘절규’는 2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1992만 달러(약 1360억 원)라는 현대화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현대 예술사에서 ‘절규’만큼 유명하고 논란 많은 그림도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텍사스대 연구진은 그림 속 남자를 절규하게 만든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섬 화산 폭발이라고 발표했다. 근대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1883년 화산 폭발 때 발생한 화산재로 인해 유럽과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붉은 노을이 나타났다. 그림에서 빨갛게 칠해진 하늘이 그것이다.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절규하고 있는 인물은 가족의 잇따른 죽음과 여자에 대한 애증으로 고통받았던 뭉크의 자화상이란 견해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뭉크가 앓았던 신경쇠약 등 정신질환의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절규’는 유독 도난과 악연이 깊다. 1994년 2월 12일 괴한이 오슬로의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창문을 깨고 들어가 ‘절규’ 원본을 훔쳐 달아났다. 3개월 뒤 구매자를 가장한 경찰의 함정수사로 범인이 잡히고 작품은 돌아왔다. 2004년엔 복면 무장 강도가 오슬로 뭉크미술관에서 관람객이 보는 가운데 또 다른 버전의 ‘절규’와 뭉크의 다른 그림 ‘마돈나’를 떼어 승용차에 싣고 유유히 사라지는 희대의 사건이 있었다. 두 그림은 회수 과정이 분명히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박물관에 돌아왔다.

▷‘절규’는 인간의 불안과 슬픔을 뛰어나게 표현한 현대화의 아이콘으로 여러 작품에 패러디됐다. 공포영화 ‘스크림’에서 범인이 쓰는 가면이 ‘절규’의 그것이다. 현대인은 왜 ‘절규’에 매료될까. 많은 사람들이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마음속의 불안을 비우는 법은 없을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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