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두부장수 종소리… 자전거 종소리… 데스크 벨소리…그 소리 따라, 20년간 종 8000점 만나
대구 수성구 지산동의 이재태 교수 자택 안방에는 눈길 닿는 곳마다 종이 있다. 이 교수가 대피 등을 알릴 때 사용하는 종을 들고 있다. 대구=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대구 중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에 있는 이 교수의 연구실에는 책이 빽빽한 책장 선반마다 작은 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수납장 안도 온통 종이다. 20여 년 동안 수집한 종이 8000점을 넘는다. 자택에 5000여 개, 병원 복도에 2000개, 나머지는 ‘월드 벨 컬렉션’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충북 진천의 진천 종 박물관과 이 교수의 연구실에 있다.
“종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청아한 소리뿐 아니라 한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인류학적, 미적인 관점에서 의미를 지닙니다. 심각하게 수집에만 전념하진 않았지만, 주변에서 보기엔 무엇에 홀린 것 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여러 종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써 있어 더욱 반가웠지요. 1940∼60년대 것은 일제가 많고, 1970∼80년대는 한국, 대만산이 주를 이룹니다. 요즘은 중국, 말레이시아에서 제작한 것이 대부분이죠. 생산지를 통해 세계 경제의 변화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의 컬렉션에는 역사를 빛낸 인물, 문학 작품 주인공, 산타클로스와 천사들, 각국의 여인과 동물 등이 금속, 도자기, 유리 종에 새겨져 있다. 공습을 피하거나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한 알림 종, 망자를 기리기 위해 장례식 때 나눠준 종,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축하하려고 대포를 녹여 만든 종도 있다.
수집 초기에는 여행이나 학회 참석 차 해외에 나갈 때마다 기념품 종을 사거나 벼룩시장을 뒤졌다. 10년 전 ‘미국 종 수집가 협회’에 가입해 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희귀하거나 예술적인 조형미를 갖춘 종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이 활성화되자 이베이 같은 해외 경매사이트를 집중 공략했다. 텍스트 정도만 볼 수 있던 인터넷 초기에는 웃지 못할 일도 겪었다. 바(bar)에서 사용하던 종을 검색해 구매했는데 국제택배로 배달돼온 박스를 열어보고는 망연자실했다. 상자에 ‘아령(barbell)’이 덩그러니 들어 있었던 것.
여러 형태의 종 가운데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탁상종(데스크벨)이다. 호텔, 가게, 학교, 식당, 은행이나 하인을 둔 큰 저택에서 누군가를 부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종이다. “종을 보면서 상상합니다. 늦은 시간에 은은하게 울리는 종은 고뇌하는 시인이 잉크를 채워 달라고 하인을 부르는 소리, 거칠게 땡땡거리는 소리에는 오래 기다린 손님의 짜증이 묻어있지 않을까 하고요.”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에 다시 혼을 입히는 것이라고 하지요. 저마다 이야기를 지닌 종이 제게는 더없이 정겨운 친구로 느껴집니다.”
대구=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