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 대형 스크린, 가상-실체 경계 허물어
지난달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버버리 월드 라이브’쇼에서 오프닝 공연을 맡은 영국의 뮤지션 톰 오딜. 버버리 제공
본격적으로 쇼가 시작되자 실내 공간의 정중앙에 원통형으로 설치된 무대의 차양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흰색 차양막 아래로 영국의 신예 뮤지션 톰 오딜이 등장했다.
탐스러운 금발에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는 정열적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허스키함과 청아함이 묘하게 섞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는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이 쇼를 위해 직접 선정한 뮤지션이다. 버버리는 2010년 6월부터 음악 관련 사이트 ‘버버리 어쿠스틱’을 선보이고 있다. 베일리는 사이트 방문자들에게는 실력 있는 신예 뮤지션의 음악과 공연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하고 뮤지션들에게는 레코드회사와 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 서비스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음악은 현대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보다 즐겁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며 “음악이 좋아서 ‘버버리 어쿠스틱’ 사이트를 방문했다가 버버리의 고객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소개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다시 행사장 가운데의 원통형 무대를 비췄다. 연미복을 차려입은 10여 명의 남녀가 손가락으로 빠르게 ‘딱’ 소리를 내는 손가락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이번엔 귓가를 때리는 빗소리가 밖에서 나는 것인지,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이들의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것인지 헷갈렸다. 쇼가 절정에 이르자 단풍잎 모양의 금박지가 쏟아져 내려 빛과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렇게 ‘피지컬’과 ‘디지털’을 교란하는 것은 버버리가 의도한 ‘오감만족쇼’의 취지다. 쇼가 끝난 뒤 거짓말처럼 멈춘 비를 보고도 ‘아까 내린 비는 가짜였을까’ 생각하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정보기술(IT)의 진화와 동행하는 버버리에서 실제와 가상의 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타이베이=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