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中 합의… 베이징 병원 입원 클린턴과 통화 “키스하고 싶다” 고향 떠나 거주할 곳 톈진 선택… AP는 “中 떠나고 싶다 말해”
고홍주 법률고문
○ 클린턴 국무장관 위로 전화
3일부터 열리는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 참석차 2일 베이징에 도착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천 씨가 본인의 선택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미대사관을 떠날 수 있어 기쁘다”며 “그가 아내, 아이들과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천 씨가 6일간 머물던 미대사관을 ‘자의’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고위 관리를 인용해 “중국은 천 씨에게 인간적인 처우를 해줄 것을 약속했으며, 고향을 떠나 (중국 내) 안전한 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천 씨를 투옥하고 가택연금 조치를 내린 지방정부(산둥 성)의 탈법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는 천 씨가 병원으로 가던 중 클린턴 장관이 전화해 위로와 격려를 했다고 보도했다. 천 씨는 통화 말미에 “당신(클린턴 장관)과 키스하고 싶다”고 말했다.
○ 미국은 실리, 중국은 명분
미중 양국은 이번 사건을 원만히 해결하는 데 방점을 두고 각자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서둘러 봉합한 흔적이 보인다. 중국 외교부의 류웨이민(劉爲民) 대변인은 2일 천 씨가 미대사관을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전하면서 이례적으로 미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미대사관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중국 공민인 천광청을 대사관 안으로 데려갔다”며 “미국의 방식은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고 못 박았다. 특히 그는 “미국에 사과를 요구한다. 철저히 이 일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올가을 정권 교체를 앞둔 중국이 불안정한 미중 관계를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시라이(薄熙來) 사태 이후 지도부가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 천 씨 진심은 “중국 떠나고 싶다”?
미국은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 해결에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미국행이 아닌 중국 체류로 결론을 이끌어냈다. 중국의 명분을 살려준 셈이다. 미중 양국은 협의 과정에서 천 씨가 앞으로 거주할 곳으로 7곳을 제안했고 천 씨가 그중 톈진을 택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천 씨는 대사관에서 나온 뒤 병원에서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 중 “(중국에서)가족들의 신변이 걱정된다. 이젠 중국을 떠나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천 씨는 “중국 당국이 만약 내가 미국행을 택하면 아내를 때려죽일 수도 있다는 협박을 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체면 때문에 천 씨의 미국행을 필사적으로 막았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천 씨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미중의 외교적 긴장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정부가 천 씨와 관련해 약속한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강제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중국은 천 씨 사례가 좁게는 인권운동가 단체에, 넓게는 반체제 세력에 전염되는 것을 차단해야 하는 과제에 봉착했다.
고홍주 법률고문
고 고문은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한국 교포로는 최고위직인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에 임명돼 공직에 진출했다. 이후 예일대 법대 학장을 지내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형 경주 씨(보건부 보건담당 차관보)와 함께 나란히 차관보급에 임명됐다.
고 고문은 장면 정권 당시 주미대사관 공사로 일하다 5·16군사정변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고 고광림 박사와 사회학자 전혜성 박사의 아들이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