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문재인 대망론’이 떠오른 이유
문재인은 “탈(脫)노무현은 이미 돼 있다”고 했지만 지금 역량으로는 ‘노무현정신’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사실 문재인의 정치철학이라고 나온 것도 없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남자’로 국정 현안에 개입했으나 정작 중요한 일은 못하고, 안 할 일은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몇 년 새 문재인의 정치적 판단력이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총선 막판에 ‘나는 꼼수다’ 팀을 부산까지 초청해 곁불을 쬐려 한 일이 증거다. 대선에 선수로 뛸 사람이 후보경선 엄정 관리가 생명인 민주통합당 대표 자리에 자기편을 앉히도록 개입해 결국 그 자신도 ‘꼼수정치의 한 축’임을 확인시키고 말았다.
그가 자천타천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된 것도 이런 ‘무(無)의 철학’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쉽게 말해 친노가 ‘도구’로 쓰기엔 정치력도 콘텐츠도 없는 문재인이 딱 알맞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실세총리였던 이해찬은 ‘선거전략의 달인’인 만큼 자신이 주자로 나서면 될 것도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유시민은 ‘네가지’(싸가지)가 없고 자기 정치만 한대서 친노로부터 “우리 식구 아니다” 평가 받은 지 오래다. 스타 결핍에 허덕이던 1년 전, 노무현보다 잘생기고 인품도 있어 보이는 문재인이 4·27 보궐선거 야권단일화를 중재하고 “노무현 운명이 나의 운명”이라며 등장하자 일부 친노는 쾌재를 불렀을 터다.
내 편은 善意가 ‘노무현정신’인가
대체 노무현정신이 뭔지는 원소유주가 세상에 없는 관계로 무한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은 “생전에 얘기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란 표현 속에 다 담겼다”고 했다. 박지원은 원내대표에 나서면서 통합의 정신을 노무현 가치인 양 강조했다. 백원우가 “노무현 가치의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한 것부터 완전히 갈아엎기, 깽판, 막말 같은 극단까지 누구든 원하는 대로 끌어댈 수 있는 만병통치 용광로가 노무현정신이다.
그중에서 공통점을 찾아 한 단어로 줄인다면 ‘선의’가 아닌가 싶다. 노무현이 추구한 가난하고 힘든 이를 위한 복지나 균형발전, 지역주의 해소 등의 정책은 선의에서 비롯됐을지언정 성공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정부의 능력이나 세계적 흐름, 시장원리와 인간본성으로 인해 실현되기 힘든 정책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선의대로 안 된 것인데도 노무현과 친노는 내 편 아닌 모두를 적으로 공격했다. 친노를 폐족으로 전락시켰던 그 정신과 정책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없음을 어쩌면 노무현도 알았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아들딸을 이 땅 아닌 미국에서 살게 했는가 말이다.
지금도 문재인을 둘러싼 친노는 자기들만 옳기에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 노무현과 닮아 있다. 문재인 골수 지지자인 김어준이 나꼼수의 총선 책임론을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이 아니다” 한 거나, 이해찬이 “실체도 없는 계파 타령 말자”며 강한 리더십과 단결을 주장하는 게 단적인 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