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
식민지시대 미국의 거리가 복원돼 있는 버지니아 주 동남부의 윌리엄스버그. 이 조그마한 도시에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 민속미술박물관’이 있다. 석유재벌 존 D 록펠러 2세의 부인인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가 생전에 수집했던 미국 민화들을 전시한 곳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 안을 민화로 꾸밀 만큼 애정이 각별했다. 박물관을 둘러보니 전시된 민화의 대부분은 초상화였다. 후대 사람들이 사진관에 가 초상사진을 찍듯이 당시 미국인들은 민화로 자신의 모습을 남긴 것이다.
문득 지금까지 한국에서 간행된 민화 관련 책에서는 초상화를 다룬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는 민화 초상화가 전혀 없었던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드물지만 분명히 민화 초상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 어진 화가의 서민 초상화
‘노부인상’(채용신·1926년). 서울대박물관 소장, 비단에 채색, 63.0×104.5cm. 화려한 혼례복을 입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젊음과 늙음이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채용신은 주로 전북 정읍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벌였다. 말년엔 아들, 손자와 함께 ‘채석강도화소(蔡石江圖畵所)’라는 화실을 차리고 주문을 받아 초상화를 그렸다. 전신상 100원, 반신상 70원 등으로 가격을 정했고, 사진을 가져오면 초상화를 그려줬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초상화를 상업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일제강점기에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사진술이 알려지면서 나타난 것이었다.
1926년 채용신이 그린 ‘노부인상’(서울대박물관 소장)은 일반 할머니를 그린 초상이다. 주인공은 산수화의 병풍 앞에 새색시처럼 꽃단장을 하고 앉아 있지만, 한눈에 평범한 할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회갑연 때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에서 “할매! 오늘 채려 입어논께 새색시처럼 곱구만요”라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덕담이 들리는 듯하다. 생동감 넘치는 원색의 옷차림과 인생역정을 보여주는 얼굴의 주름에서 젊음과 늙음의 만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는 빛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의 속도를 한순간이나마 거꾸로 돌리는 ‘백 투 더 퓨처’ 같은 장면이다.
○ 민화 초상화의 어수룩한 캐릭터
‘초상’(작자 미상·19세기 말). 개인 소장, 82.9×132.8cm. 초상화의 주인공은 비록 말단 관직의 인물이지만 책과 문방구 같은 학자적인 배경에서 그의 생활철학을 엿볼 수 있다.
뒤로 갈수록 크게 그리는 역원근법으로 묘사된 서안 위에 책과 문방구를 놓은 모습은 영락없는 민화 책거리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주인공은 평정건(앞이 낮고 뒤가 높아 턱이 진 두건 형식의 관)을 쓰고 청단령(깃을 둥글게 만든 푸른색의 포)을 차려입었다. 추측컨대 양반보다는 말단 관직에 종사하는 서리(胥吏)인 듯하다. 꼿꼿하게 앉아 있는 자세가 딱딱하게 보이는데, 이처럼 능숙하지 않은 모습에서 오히려 친근함이 돋보인다. 만일 여유롭고 의젓하게 그렸더라면 그림은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 어색하고 경직된 자세에 안경까지 쓴 어수룩한 캐릭터는 참으로 살갑다. 이는 우리 민화의 큰 장점이다.
휴대전화를 든 손을 길게 뻗어 ‘얼짱 각도’를 잡는 젊은이의 모습은 요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초상화, 아니 초상사진은 이제 특별한 사람을 위한 ‘특정한 이미지’가 아니라 누구나 어느 때나 가질 수 있는 ‘일상의 이미지’가 됐다. 오랜 세월 동안 견고하게 굳어진 초상화의 성역을 무너뜨린 민화 초상화와 서민을 담은 채용신의 초상화. 휴대전화에 담긴 얼굴사진 속에서 그들을 떠올려 본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문화재학)·한국민화학회 회장 chongpm@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