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 산업부 차장
이야기 둘. 미국 서북쪽 끝에 자리 잡은 워싱턴 주는 ‘에버그린 스테이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도 며칠 안 된다. 나무들은 빠른 속도로 쑥쑥 자란다. 워싱턴 주 최대 도시인 시애틀은 오래전부터 목재 집산지로 성장했다. 시애틀에서 연수하던 시절 밤새 거센 바람이 분 어느 아침에 뿌리째 뽑힌 나무들을 보고 놀랐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20m쯤 되는 나무의 뿌리가 불과 1m 정도밖에 안 됐다. 토네이도가 분 것도 아닌데 나무들은 맥없이 뽑혀 나갔다.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나무들이 뿌리를 깊이 박을 필요가 없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최근작 ‘러시’에서 ‘경쟁 혐오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예찬과 동경이 만연한 사회에 경쟁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는 주장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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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10일 ‘2012년 미국 최고·최악의 직업’을 조사해 발표했다. 수입, 직업 전망, 업무 환경, 스트레스 등을 고려했다. 200개 직업 가운데 신문기자가 최악의 직업 5위에 올랐다. 업무 강도가 세고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기자는 경쟁이 가장 심한 직업 가운데 하나다.
기사가 나간 며칠 뒤 포브스의 제프 베르코비치 기자가 홈페이지에 반론을 올렸다. 제목은 ‘그 조사는 잊어버려라. 저널리즘이 최고의 직업인 이유’. 이 가운데 기자로서 십분 공감하는 대목이 있다. ‘스트레스는 짜릿함이다. 편집국의 기자 수십 명이 데드라인에 맞춰 특종 기사를 추적해갈 때 아드레날린이 러시를 이룬다.…나는 심장이 뛰는 직업을 택하겠다.’
나무와 인간의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부르고뉴의 포도나무를 더 빽빽하게 심었으면 아예 열매를 맺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애틀의 나무가 강풍을 염두에 두고 미리 뿌리를 깊이 내릴 리도 없다. 하지만 역사는 인간 사회 역시 경쟁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구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즐기는 게 몸에도 좋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