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정치부 차장
그는 법안을 직접 쓴다. 특유의 촘촘한 글씨체로 한 자 한 자 연필로 써내려가면서 중요한 부분엔 밑줄을 긋고 빨간색 펜으로 ○, ※ 같은 기호도 붙여놓는다. 법안제안서를 e메일로 보내는 대신 의원들에게 직접 이해를 구하고 서명을 받는다.
2009년 2월에는 여야 간 다툼이 있는 법안이라도 일단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 상정한 뒤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일명 박상천법안)을 발의했다. 그때도 16개국의 사례를 공부해 안을 만들었다. 다수당의 법안 강행 처리와 소수당의 물리적 저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수당이나 소수당 모두를 설득할 만한 논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2월 10일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그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는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에서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맞붙어야 할 상대 후보의 조부와 자신의 부친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앞선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연장자인 제가 물러서는 게 옳다”고 했다. 30여 년의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보도자료에는 눈물 섞인 아쉬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중국 ‘현문(賢文)’에 “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에 새 사람은 옛 사람을 대신한다(長江後浪催前浪 浮世新人換舊人)”란 말이 있다. 세대교체를 뜻하는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물갈이’ 경쟁이 가열됐던 이번 4·11총선. 많은 다선 노장이 무대에서 내려간다.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게 자연의 이치지만 갈수록 우리 정치는 앞물결을 대신할 뒷물결의 실력이 부치는 듯해 아쉽고 섭섭하다.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