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논설위원
당시 한총련 간부는 진위를 묻는 필자에게 “우리는 칸트 철학이든 주체사상이든 고금의 다양한 사상을 학술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주적’ 조직이다. 무슨 배후의 지령에 따라 줏대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공안당국자는 “북한과 ‘단선연계(單線連繫) 복선포치(複線布置)’된 것”이라며 정색했다. 상위 조직원이 여러 하위 조직원을 두되 상-하 조직원만 일대일로 접촉하고 하위 조직원끼리는 서로 알 수 없게 차단하는 지하조직 규율. 그래서 북과 연결된 상위 조직원 외엔 조직의 실체를 모른다는 의미였다.
주사파 내부에서도 이탈자가 속출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운동권에서 활동한 한 이론가는 “주체사상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닌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강조하는데, 수령론과 후계자론까지 체화한 교조적 북한 추종은 운동가의 자발적 창조적 사고능력을 저해한다”며 핵심을 짚었다.
필자가 18년 전의 취재수첩을 뒤적인 건 빛바랜 ‘NL 주사파’의 재등장 때문이다. 19대 국회 원내교섭단체를 노리는 통합진보당(통진당)의 주류가 1980년대 운동권의 NL계 경기동부연합 인맥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낳았다. 당 지도부와 총선 후보 중 주사파 민혁당 등 북한의 지하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전향하지 않은 사람이 여럿이라는 폭로가 뒤따랐다.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은 통진당과 민주통합당의 야권연대 성사를 지원한 뒤 평양으로 날아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쓴 조화를 바쳤다. 지난 주말 범민련은 “4·11총선에서 정당투표는 통진당으로 몰아주자”는 성명을 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모른다고 했고 조국 서울대 교수는 경기동부연합이 ‘NL 비(非)주사파’였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기동부연합 출신을 비롯한 NL계는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의 당권파였고 이들의 노골적 종북(從北) 노선이 내부 갈등을 촉발해 2008년 노회찬 심상정 씨 등의 탈당 사태가 불거졌다. 민노당 당직자들이 간첩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