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 차장
휴대전화 시장만큼 공짜의 유혹이 판치는 곳이 총선을 며칠 앞둔 정치권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여야 복지공약에 들어갈 돈은 5년간 최소 268조 원이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공짜를 앞세운 정책이 수두룩하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 발표한 164조7000억 원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제시한 89조 원을 합치면 253조7000억 원으로 재정부 발표와 별 차이가 없다. 이런데도 재정부의 분석이 나오자 정치권은 발끈하며 ‘관권선거’ 운운한다.
뻔한 공짜전략이 먹힐까 싶지만 정치적 효과는 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무상복지 공약에 찬성하는 성인 비율이 64.4%로 반대(35.6%)보다 훨씬 높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무상복지 재원 마련 방법으로는 부자증세(39.2%)와 탈세예방(37.5%) 등이 꼽혔다. ‘무상복지를 하되 내 주머니에서는 돈을 내긴 싫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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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세 인상은 정치적으로 큰 모험이다. 1997년 일본의 하시모토 내각은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렸다가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1993년 캐나다의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는 부가세를 전면 실시했다가 여론 악화로 물러났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들이 부가세를 올리려는 이유는 거덜 난 재정을 확실하게 보충할 다른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공짜 복지 공약을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은 부가세율 인상이다. 경제전문가도 대부분 동의하는 부분이다. 지난해 걷힌 국세 192조4000억 원 중 부가세는 51조9000억 원이다. 야권의 주장대로 대기업 법인세와 고소득층 소득세 세율을 높여봐야 몇조 원 더 걷힐 뿐이다. 이에 비해 현재 10%인 부가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로 높이면 수십조 원이 마련된다.
하지만 한국의 어느 정치인도 부가세 인상을 입에 올리진 않는다. 간접세인 부가세는 가난하건 부유하건 모든 국민이 돈을 쓸 때 무조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주머니를 털어 복지에 쓰는 데 동의한 사람도 앞으로 모든 소비에 8%포인트의 세금을 더 내라는 걸 반길 리 없다. 정치인이 표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공짜 복지로 구멍 나는 재정을 당분간 국채 발행 등으로 눈속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 공짜 복지를 주장해 정치적 떡고물을 챙긴 정치인 중 상당수는 그때 퇴장했겠지만 결국은 엄중한 현실 앞에서 다른 선진국처럼 부가세 인상 등을 통해 국민에게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복지에 욕심 부린 걸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투표장에 들어서기 전에 공짜 공약의 계약조건부터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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