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 기자회견서 주요 혐의 부인… 의혹 증폭
○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반박, 얼마나 설득력?
이 전 비서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08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에 대해 불법사찰을 했다는 혐의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김 전 대표의 개인비리 조사 과정에서 김 씨를 공기업 자회사 임원으로 오인해 우발적으로 빚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법사찰 혐의는 이미 불법사찰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항소심까지 유죄가 선고돼 현재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 전 비서관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는 주장을 한 셈이다.
그는 또 2010년 7월 7일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증거인멸 지시 의혹에 대해선 자신이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지시했고 어떠한 책임도 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하드디스크 안에 감춰야 할 불법자료가 있어서 삭제를 지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혹시 공무원 감찰에 관한 정부부처의 중요 자료 등 개인 신상 정보가 들어 있어 외부에 유출될 경우 국정 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광고 로드중
이 전 비서관은 또 “매달 특수활동비 280만 원을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장 전 주무관의 폭로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청와대 상납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주장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건넸다는 의혹은 시인한 만큼 장 전 주무관이 최근 폭로한 돈거래 사실관계 자체는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명목이 ‘입막음용’인지, 이 전 비서관이 주장한 대로 ‘선의’인지는 검찰 수사에서 따져봐야 할 문제다.
○ 청와대로 향하는 의혹은 여전
이 전 비서관이 20일 기자회견에서 자료 삭제를 지시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청와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청와대가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 전 비서관 자신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였다는 점에서 청와대와 관련이 없다는 그의 주장은 신빙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또 이 전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이 19일 “장석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이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시켜 내게 5000만 원을 줬다”고 폭로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점도 의심을 키우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이 무관하다고 주장한 대통령민정수석실의 개입 여부도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문제다.
이 전 비서관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료 삭제의 몸통이 자신이라고 시인함에 따라 증거인멸의 윗선을 둘러싼 검찰 수사는 이 전 비서관의 ‘윗선’이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장 전 주무관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 지목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의 윗선인 이 전 비서관이 최 전 행정관에게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검찰 수사는 주미 한국대사관에 근무 중인 최 전 행정관을 불러 이 전 비서관에게서 자료 삭제 지시를 받고 장 전 주무관에게 지시를 전달했는지 조사한 뒤 이 전 비서관을 상대로 자료 삭제, 증거인멸을 지시한 진짜 윗선이 누구인지 확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