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제공
옛 사대부가는 집을 지을 때 항상 덕망 있는 선조의 위업을 빌렸다. 자기가 지은 집이라 해도 항상 조상의 음덕으로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겨울철에 북서풍이 심한 이 지역의 기후에 맞게 안채는 겹집 ‘ㄱ’자로, 그 옆에 ‘ㅣ’자로 곁채를 마련했고, 다시 트여 있는 부분에 전면 다섯 칸, 측면 한 칸의 사랑채인 ‘산수헌(山水軒)’을 배치했다. 그래서 건물 전체로는 튼 ‘ㅁ’자를 이루고 있다.
산수헌은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두 단의 기단 위에 앉아 있는데 기단의 높이가 1.2m에 가깝다. 특히 경사지에 있어 그 모습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우람해 보인다. 사랑채뿐만이 아니라 안채의 경우도 기단이 높다. 상주지역 사대부가의 특색 중 하나는 산등성이에 있든, 평지에 있든 모두 기단이 높다는 것이다. 집의 위엄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독 이 지방의 유림들만 독불장군일 리는 없다. 당시의 건축법은 ‘성현들이 하던 대로’라는 묵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원인은 눈이다. 상주지역의 적설량은 전국 최고를 기록할 때도 많다. 비는 금방 빠진다. 그러나 눈은 지속적으로 쌓여 있다. 이 적설에 대비한 가옥 형태가 바로 기단을 높이는 방법이다. 눈이 많이 오면 마당이 아니라 연결된 기단을 통해 채를 드나든다. 산수헌의 높은 마루에서는 솟을대문 너머로 노악산, 천봉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이 내리는 겨울, 이 마루에서는 온 우주가 고요할 것 같다.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