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여야 10%내외 공천 실적에 실망
지역구 차원에서부터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산시키려면 어느 정당이나 각기 우세한 지역에 여성 공천자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천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어느 정당에도 지역 공천에서 여성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 공천이라고 공언한 새누리당도 여성 공천을 위한 지역구도를 잡고 전략적으로 공모했다면 막판까지 우왕좌왕하며 후보자들을 ‘돌려 막기’ 하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여성정책을 국정의 주요 부분으로 여겨야 하는 것은 여성 인력의 적극적 개발과 활용 없이는 국가의 성장동력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고 자유와 평등이 함께 보장되는 복지국가 건설의 목표는 달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성정책은 이제 여성의 일자리 창출과 능력 개발, 사회참여 확대에만 머물 수 없고 육아, 교육, 가족문제, 특히 저출산과 성범죄 문제도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대한민국이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데 후진 중 후진으로 남아 있는 이상 국가의 다른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 민주통합당이 성평등 정책 10개 항을 내놓고 분야별 정책을 제시한 것은 여성운동가 출신들이 당내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多選 이유 검증된 인재 배제해서야
공천을 받은 사람 중에는 여성이 수적으로 적을뿐더러 여성문제뿐 아니라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책임의식과 정치적 능력에서 공인의 자격을 검증받았다고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 너무도 적다. 그래서 여성정책뿐 아니라 이 나라 국정의 앞날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총선을 앞둔 국민의 마음을 여야 관계없이 무겁게 하는 것이다. 세상 어느 안정된 나라에서 정치적 경륜이나 지적 능력이 국민의 대표 선출에서 이점이 아니라 감점으로 작용하고 다선 의원은 무조건 후보군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데 유권자가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 잘 알려진 것도 없는 새 얼굴에게 무조건 기대를 거는 풍조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새 피의 수혈은 중요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 본성인데 인간을 다루는 정치에서 경륜의 존중 없이 능력과 지혜가 쌓일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단련된 여성 인재는 드문데 김영순 이계경 나경원 전여옥 진수희 등 능력과 소신이 검증된 여성 인재들을 모두 배제한 공천 결과는 실망을 넘어 깊은 우려를 낳는다. 인재를 휴지조각 취급하면서 정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