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임석재 지음/520쪽·2만2000원·인물과사상사노출철골 에펠탑 속내엔 섬세한 레이스장식… 진보-보수 건축양식 힘겨루기 팽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샹보르 성의 이중나선형 중앙계단(위). 인물과사상사 제공. 다빈치는 인체를 혈관과 신경으로 표현한 ‘혈관의 나무’라는 해부도(아래)를 남겼다.
16세기에 초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프랑스 상트르 주의 샹보르 성은 내부의 이중 나선형 중앙계단으로 유명하다. 이 계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실물을 남긴 유일한 건축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출발 지점을 두 곳에 두어 뱀 두 마리가 양쪽에서 막대기를 감아 올라가듯 두 계단이 엇갈리며 돌아 올라가는 모양이다. 왕과 하인의 동선을 분리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두 계단을 따로 두는 것보다 공간을 절약하고 동선의 효율을 높인 기능적 작품이다.
다빈치가 이런 이중 계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해부학적 지식 덕분이었다. 혈관과 신경만 따로 떼어 투명 상자에 넣은 것 같은 ‘혈관의 나무’라는 해부도를 남겼던 그는 이 개념을 계단에 적용했다. 혈관과 신경의 작동 방식이 교차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 동선의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인 저자는 몸과 건축을 통섭한 첫 연구 결과를 이 책으로 엮었다. 국내에선 그동안 몸과 건축의 융합 연구가 전무했지만 저자는 “몸과 건축은 연계·융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앞으로 이와 관련한 책을 시리즈로 낼 계획이다.
전기 그리스 시대(기원전 5세기 이전)에는 몸을 ‘전일론(全一論)’의 시각으로 보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금언처럼 몸을 육신과 정신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본 것이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 이후 소크라테스가 ‘육신은 정신의 감옥’이라 보았고 플라톤이 몸에서 육신과 정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을 고착시키면서 육신으로서의 몸은 열등한 것으로 치부됐다. 이런 몸의 이원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전일론이 붕괴되면서 인류는 기나긴 정신적 고통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현대 문명이 사람의 몸을 기계 부품처럼 정의함으로써 실적제일주의만을 부르짖게 됐다는 것. 이런 점에서 다빈치를 현대 문명의 위기를 부른 장본인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다빈치가 인간의 몸을 부위별로 뜯어 정확히 기록함으로써 몸의 작동을 기계적으로 파악하는 기초를 닦았기 때문이다. 그는 르네상스의 부위론과 기계론을 정착시켰고 이는 데카르트의 ‘몸 기계론’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이어진 만국박람회의 건축 양식은 ‘보수 대 진보’ 갈등의 축소판이었다. 역사주의 양식의 건축이 우세하면 보수 진영의 승리로, 철물구조 같은 신건축 양식이 두드러지면 진보 진영의 승리로 여겨졌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결국 절충된 건축 양식이 나타났다. 주 전시관이던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 모두 철골조와 역사주의 외피의 혼합 양식을 띤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위)은 멀리서는 신건축 양식의 철골 구조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섬세한 레이스 장식의 역사주의 양식이 혼합돼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사보아 빌라(아래)는 평평한 지붕과 육면체 형태에서 보듯 공산품을 연상시키며 이는 현대의 도구적 몸 개념과 궤를 같이한다.
몸과 건축을 연계시킨 아이디어가 흥미롭지만 학술서와 대중서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만큼 웬만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내용을 소화하기 쉽지 않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