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자세히 보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좌파와 우파의 노선 갈등이 아니다. 마오쩌둥의 인치(人治)로 인한 문혁의 폭력성을 맛봤던 중국인들은 법 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영웅을 원치 않는다. 그동안 보시라이-왕리쥔 팀은 ‘홍(紅)색 캠페인’과 ‘흑(黑)사회 일소’ 구호를 내세워 군중심리를 이용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방해가 됐던 변호사는 무리하게 투옥했다. 작년 7월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을 맞아 보시라이는 마오쩌둥의 어록을 충칭 시민들에게 문자로 날렸다. 관심을 모았던 저렴한 공공 임대주택 공급과 농민의 도시 이주 편의 제공 등의 새로운 정책 시도인 ‘충칭 모델’도 정치적 쇼맨십으로 폄하되는 이유다. 경제학자들은 중국 지방정부의 재정 취약성과 부채 부담 속에 선심성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했다.
중국 지도부는 대약진운동 등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법치(法治)로 뒷받침되지 않는 선동적 경제정책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부정부패 등 관 주도형 경제의 폐단이 갈수록 크게 나타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다시 ‘좌파 엘리트’ 주도의 지방정부에 무한대 권력을 쥐여 주는 발전모델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렇다고 해서 보시라이의 몰락이 중국의 개혁 가속화와 국제적 규범 및 민주화의 조기 정착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체제 변화의 역학은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고속도로 입구까지는 다양한 세력의 이해가 일치하므로 쉽게 도달할 수 있으나, 한번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 민주화의 톨게이트를 지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개혁 과도기에 각종 이권을 획득하게 된 중국의 지배엘리트는 정치개혁 없는 시장(市場)의 달콤함에 빠져 있다. 되풀이됐던 원자바오의 정치개혁 호소가 먹혀들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의 미래는 지배 엘리트가 이미 확보한 기득이익의 보호 정책과 사회 발전을 위한 정치 변화의 조화 비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단순히 좌와 우의 노선 갈등이 아니다. 이번의 파동은 중국에서 기득이익에 충실한 베이징의 정파 연합이 민심 선동적 정치캠페인을 분쇄한 첫 사례다. 결코 개방적 우파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 중국의 체제 변신의 한계성과 사회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엔트로피는 곧 공세적 대외정책으로 연결되곤 한다. 중국의 대(對)북한 영향력 확대, 이어도와 남중국해 문제 야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성장통으로 인한 ‘정치외교적 황사’에 대비할 때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