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리개 상처 입은 아이들, 이젠 가정을 꾸리고 싶대요”
온두라스에서 12명의 아이를 엄마처럼 돌보는 권혜영 씨(가운데). 가까운 사람들에게 끔찍한 성폭행을 당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은 권 씨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에 밝은 표정을 찾았다. 아구아블랑카=한효준 채널A 기자 ybshan@donga.com
1월 23일 오후 수도 테구시갈파 국제공항에 닿았다. 청사 밖으로 나오자 기아대책 기아봉사단인 권혜영 씨(42·여)의 웃음소리가 울적한 생각에 빠져 있던 기자를 깨웠다. 탤런트 전원주 씨를 방불케 하는 폭발적인 고음. “빌라에서 4일 동안 우리 아이들이랑 그냥 놀다 가시면 돼요. 호허하하하하하.” 권 씨의 태평한 웃음소리와는 달리 봉사 지역으로 가는 길에 들른 대형 쇼핑몰은 기관단총을 들고 방탄재킷을 입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권 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였다. 14년 전 단기 봉사 활동을 하러 들른, 이름도 생소한 나라 온두라스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갱단이 대낮에도 활개 치는 이곳에서 커피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상품은 마약과 성매매, 폭력이라고들 했다. 에이즈도 만연했다. 미국인 간호사 하나가 “여기서 우리 함께 성매매 여성들을 살려 보자”고 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얼룩진 삶은 귀국 후에도 그의 맘을 떠나지 않았다. 다니던 병원에 사직서를 던지고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직장 잘 다니다 결혼하라”는 가족을 어렵게 설득했다.
빌라에서 청춘 시트콤 찍듯 쾌활하게 어울리는 열두 아이의 삶이지만 빌라에 닿기 전엔 그 하나하나가 짧고 독한 비극이었다. 킴벌리(14·여)는 일곱 살 때 어머니를 백혈병으로 잃고 친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다 열한 살 때 임신했다. 낳은 아이는 두 달 만에 죽었다. 남자 아이 다니엘(11)은 아버지는 갱, 어머니는 경찰이었다. 각각 활동과 작전 중에 숨졌다. 사촌형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의 동생 노에(10) 역시 동네 형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왔다. 어려서부터 쓰레기 수거를 해 스스로 입에 풀칠했다. 사라(17·여)는 갓난아기 때 쓰레기장에 버려졌고, 중학교 때부터 마약과 섹스에 탐닉했다.
권 씨는 “차라리 고아였더라면 얘들한텐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2, 3년 전 처음 빌라에 올 때만 해도 사람을 믿지 않았다. 속고 이용당해 온 이들은 권 씨의 포옹도 밀쳐냈다. 권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밝고 똑똑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기자가 찾아간 24일 오전 빌라의 첫 수업은 사진이었다. 얼마 전 난생처음 바다를 보러 함께 떠난 여행에서 아이들이 카메라를 돌려가며 ‘가족’이란 주제로 각자 사진을 찍었는데 이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교실 앞 화이트보드에는 ‘파라 옴마(Para Omma·엄마에게)’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그 아래로 저마다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찍은 사진들을 붙여 놨다. 수업시간은 울음 반 웃음 반이 됐다. “가족이란 날 성폭행하고 때리고 버리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빌라의 엄마와 친구들 사이에서 진짜 가족이 뭔지 생각하게 됐어요. 나도 그런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안겨드는 아이들을 권 씨는 한 명씩 오래오래 품었다.
안지(16·여)는 24일 밤 채널A 카메라 앞에서 엄마는 물론이고 빌라 가족에게도 여태껏 털어놓지 못했던 어려운 고백을 했다. 어려서부터 친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해 온 안지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성폭력의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부터 포르노에 중독됐고 그것을 보면서 두 살 난 남동생을 성추행한 적이 있어요. 지난주에 그런 일을 기억도 못하는 남동생이 빌라에 찾아와 꼭 안아줬는데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그녀의 꿈은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정상적으로 결혼해 손주들 손을 잡고 빌라에 돌아오는 상상을 해요. 저 공터 너머에서 자기 아이 손을 잡고 ‘엄마’라고 부르는 날을요. 그날이 꼭 왔으면 해요. 오겠죠?”
늘 호탕한 웃음으로 빌라를 밝히던 권 씨의 눈이 처음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아구아블랑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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