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실장
공직 경험을 쌓지 않은 사람이 선거를 불과 몇 달 남겨놓고 출마를 선언해 단번에 대통령으로 점프하기는 어렵다. 국가경영이 벼락치기 과외로 습득할 수 있는 기능은 아니다. 기존 정치인들에게 식상한 국민이 ‘새것’에 쏠린 현상이 안철수 바람이었다. 만두를 한 솥에 넣고 찌면 다 같은 만두가 되듯 기존 정당의 가마솥에 들어 있는 정치인들은 다 속이 곯은 만두라고 국민이 판단하는 모양이다.
안철수는 직접 정치를 안 할지 모르지만 그의 지지율을 50%까지 끌어올렸던 무당파(無黨派) 층의 표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대선 판세가 결정될 것이다. 그가 직접 출마하지 않고 지난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특정 후보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가 문재인에 대해 벌컨포를 쏘면서도 안철수를 끌어안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문재인도 틈만 나면 “안철수가 우리와 함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
문재인은 안철수처럼 완전 신품은 아니지만 낡은 중고 정치인은 아니다. 정치와 벼슬 앞에서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발휘한 적이 있는 점에서도 둘이 비슷하다. 요즘 국민은 겸양지덕을 갖춘 신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민주통합당은 문재인이라는 대안이 있는데 안철수에게 매달릴 것 같지는 않다. 문재인의 한 측근은 “총선이 끝나면 대선 캠프를 가동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재인이 트위터에 정수장학회를 거론하며 박근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 것도 “나의 상대는 박근혜”라는 선전포고다.
문재인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비서실장을 했지만 본격적인 검증을 받은 적이 없다. 김두관은 “문재인은 예전 기준으로 보면 대통령감은 아니다”라는 말을 기자에게 했다가 해명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김두관은 문재인이 낙마했을 때 “내가 대안”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PK(부산경남) 출신 정치인은 “문재인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부터 인권변호사를 해 크게 흠잡을 만한 것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김두관은 차차기를 겨냥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김두관이 전국적인 인물로 뜨는 분위기는 아니다.
노무현은 11대 총선 때 부산에 출마했으나 지역 기류를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총선 당시만 해도 노무현은 유력한 대선 후보는 아니었다. 부산에서 6선 의원을 지낸 박관용(전 국회의장)은 “문재인은 지금 유력한 대선 후보다. 부산에는 부산 출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기류가 계속 상승하면 PK의 다른 민주당 후보는 몰라도 문재인의 총선 승리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고 예측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이인제가, 2002년에서는 노무현이 PK 표를 많이 가져간 것이 이회창의 중요한 패인이었다. 노무현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 PK 지역에서 29%를 득표했다. 문재인은 이번 총선 때 민주당이 낙동강 벨트에서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하면 2002년 노무현 모델을 재현하려고 할 것이다.
진보, 외교안보 책임성 보여줘야
문재인은 책 ‘운명’에서 ‘진보 진영이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와 국가경영, 나아가 외교 안보 문제에 대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썼다. 매우 지당한 말이지만 문재인에게 그대로 돌려줄 수도 있다. 외교 안보 현안에 대한 요즘 문재인의 태도는 다수파가 되려는 정치인의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니다.
박근혜는 문재인을 직접 타격하는데, 문재인이 언제까지 박근혜의 아버지 이야기만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재인이 과연 다양한 분파를 아우르면서 검증이라는 난관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지, 민주당 안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상수(常數)지만 문재인은 아직은 변수(變數)로 봐야 하는 이유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