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묻힌 ‘기억’을 꺼내 닦아냈다, 다시 돌아올 그들을 위해…
‘기억 제작소’에서 되살아난 희망들 가칭 ‘기억 제작소’라고 불리는 곳에서 쓰나미 흙더미에 묻혀 있던 연하장들이 빨래집게에 걸려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앨범, 사진, 연하장들을 최대한 복원해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을 했다.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일본에 급파됐을 때도 눈발이 날렸었다. ‘방사능 눈’을 맞을까 싶어 긴장했던, 눈앞에 펼쳐지는 사상 초유의 재난현장 앞에서 할 말을 잃었던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리쿠젠타카타 시는 당시 지진해일(쓰나미)로 통째로 사라졌다. 죽거나 행방불명인 사람은 약 1850명. 주민 10명 중 1명꼴이다. 대지진 때 여러 현장을 뛰어다녔지만 이곳 모습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2012년 1월 26일 다시 찾은 것이다.
27일 오전 8시 반 재해자원봉사센터. 평일인 데다 기온이 영하 10도로 떨어져 있어 봉사자는 50명에 그쳤다. 한창 때는 하루 1200여 명까지 몰렸다고 한다. 센터 직원이 “처음 온 사람 있나요”라고 물었다. 의외로 기자 혼자였다. 마이크를 주면서 “한마디 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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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첫날 배치된 업무는 대나무를 잘라 트럭에 싣는 것이었다. 향후 숯으로 만들어 연료로 사용한다고 했다. 기자까지 포함해 10명이 그 작업을 했다. 대나무가 1.5L 생수통만큼이나 굵어 무게가 꽤 나갔다. 익숙지 않은 노동이어서인지 상당히 힘들었다. 더구나 날씨는 영하 10도. 하지만 같이 힘을 쓰는 일본인 9명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이치(愛知) 현에서 온 마쓰우라 히로미쓰(松浦裕光·30) 씨는 지난해 9월 직장을 그만두고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150만 엔(약 2100만 원)으로 1년 동안 세계일주를 할 계획인데 그 전에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자원봉사에 나섰다고 했다.
지바(千葉) 현에서 온 A 씨(35)는 편의점 점장 자리를 아예 그만두고 왔다고 한다. “자원봉사 사흘째”라며 “한 달 이상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 70년을 산다고 보면 딱 중간인 나이다. 축구로 치자면 하프타임 브레이크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무엇을 위해 살지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은 가칭 ‘기억 제작소’에서 일했다. 쓰나미에 떠내려간 앨범, 사진, 연하장, 상장, 메모지 등을 최대한 원래 모습대로 복원해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기자는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흙으로 엉망이 된 연하장을 하나하나 닦는 작업을 했다. 추위로 힘들었지만 참으로 의미 있었다. 쓰나미에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연하장이 깨끗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기뻐하는 주인의 얼굴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쓰나미로 파인 해변을 돌과 흙으로 메우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영하의 날씨에 땅이 얼어 일이 쉽게 진척되지 않았다.
봉사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숙소와 식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기자는 봉사자들에게 방값을 할인해주는 스즈키 여관에서 하루 1900엔을 내고 지냈다. 점심은 매번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었다.
박형준 기자
글·사진 리쿠젠타카타=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