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전아리 지음/257쪽·1만1500원·은행나무
일본의 대표적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한다는 전아리는 “본격적으로 추리나 스릴러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그런 그가 변신을 시도했다. 이전 작품들이 주로 성장이나 로맨스소설로 말랑말랑한 젤리 같았다면 이번 작품은 쓴 소주 맛이다. 배신과 복수, 폭력과 살인으로 튀어버린 점액질의 혈흔이 책장 가득 묻어 있다. “이전과 달리 주인공들이 어른인 데다 과격한 장면도 많아 하드보일드 같죠. 그래서 성인소설로 보이는 것 같아요.”
해일 기완 유성 진철 재문은 고교 친구 5인방이다. 기완이 얼굴은 예쁘지만 ‘싸가지’는 지독히 없는 앤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인격모독적인 퇴짜를 당하고, 5인방은 복수를 계획한다.
급히 현장을 피하지 못한 기완만 경찰에 연행되지만 그는 홀로 벌을 받은 뒤 성인이 돼 출소한다.
다소 복잡한 초반은 중후반 치밀한 심리게임을 위한 포석이다. 출소한 기완이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며 옛 친구들에게 3억 원을 요구하자 친구들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돈을 한번 주면 계속 요구할 것이 뻔하고, 안 주면 앤의 실족사에 대한 진실을 폭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극적 요소가 더 가미된다. 인기 연예인이 된 주홍이다. 주홍을 사랑하는 해일은 그를 쫓는 스토커를 제거하러 나서지만 되레 스토커로 몰린다. 게다가 주홍을 사랑하는 것은 해일만이 아니다. 재벌가 유부남과 그의 동생, 그리고 해일의 친구들까지. 숨바꼭질하듯 달리며 흩뿌려졌던 사건들의 조각이 마지막에 큐브처럼 딱 맞춰지며 전기 같은 찌릿함이 느껴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