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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현장 체험]1분간의 ‘광클’이 한 학기 명운 가른다

입력 | 2012-02-11 03:00:00

대학가 치열한 수강신청 전쟁




서버가 열리는 순간, 그 누구보다도 먼저 ‘골’을 넣어야 한다. 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컴퓨터실에서 한재희 인턴기자가 미리 짜놓은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마지막 수강신청 준비를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분 만에 한 학기가 결정 나 버렸어….”

8일 오전 수강신청을 마친 한 여학생의 지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나머지 두 과목은 일단 아무 거나 넣어 두자.” “역시 수강신청은 운이야.” 이런저런 하소연이 이어진다. “나, 이번에 올킬 했어(원하는 과목을 다 신청했다는 뜻)!” 친구에게 자랑을 늘어놓는 한 남학생의 말에 부러움 섞인 눈길이 쏟아진다. 단 몇 분 만에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엇갈리는 수강신청 첫날이다.

남자 1호의 수강신청기

오전 9시 59분 57초. 정각을 알려주는 라디오 시보를 닮은 소리가 컴퓨터에서 흘러나온다. 수강신청 사이트의 서버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time.navyism.com)에서 10시 정각이 됐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다.

서버의 시간은 휴대전화 등의 표준시각과 차이가 날 수 있다. 따라서 분초를 다투는 수강신청을 할 때는 서버의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게 아주 유리하다. 아니, 시간 알림 사이트가 없으면 수강신청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심하면 1∼2초 사이에 ‘승부’가 갈리는 수강신청에서 3초면 ‘억겁의 시간’에 해당한다. 요즘 대학의 수강신청은 시작 후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 티켓 예매와 비슷하다.

바로 ‘수강신청 목록 보기’ 버튼을 누른다.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지금은 수강신청 기간이 아닙니다’란 문구만 표시되던 모니터에 드디어 수강신청 화면이 뜬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장바구니 보기’ ‘신청’을 번개 같은 속도로 재빠르게 누른다. 그 짧은 순간에도 숨이 차온다. 게임을 할 때나 필요한 ‘마우스 신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행히 절대평가로 학점 따기가 쉬운 데다 방학 동안 사흘만 다녀오면 되는 ‘야영생활과 리더십’이 성공적으로 신청됐다. 재빠르게 전공 수업 하나를 더 신청한다. 옆에서도 “됐다” “들어가진다”라는 말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장바구니’에 모아둔 8개 과목을 모두 다 신청하고 시간을 확인한다. 10시 1분이다. 2주 전부터 수강신청 때문에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아들에게 “그까짓 거, 그냥 클릭만 몇 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던 아버지의 말씀이 스쳐지나간다.

그 클릭 몇 번을 위해 수강신청 몇 주 전부터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서 강의 정보를 찾아 헤맸다. ‘교수님의 성격’에서부터 ‘과제의 양’까지 꼼꼼히 살폈다. 시간표를 짜볼 수 있게 도와주는 사이트에 과목들을 넣었다 빼보며 시간표를 짰다. 그렇게 고른 수업들을 2주 전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장바구니 속의 과목들을 신청하는 순서도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다른 학생들이 몰리는, 인기 있는 과목일수록 우선순위에 올려 0.1초라도 빨리 신청 버튼을 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꽤 오랫동안 인터넷 게시판의 동향을 파악해야 했다.

(한재희 인턴기자의 실제 수강신청 과정·25·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4학년)

남자 2호의 수강신청기

민간인으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두 달. 2년 만에 다시 준비하는 수강신청이 낯설기만 하다. 수강신청 공지를 몇 번이나 꼼꼼히 읽었다. 3주 전부터 시간표를 짰다. 취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3전공으로 선택한 경영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학교에서 경영을 복수전공하는 학생이 많아 경영 과목의 경우 수강신청 자체가 무척 어렵다.

8일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났다. 멀티미디어실이 문을 열기도 전에 학교로 가 대기하다 문이 열리자마자 첫 번째로 자리를 잡는다. ‘매크로 프로그램’ 때문에 바뀐 수강신청 방법이 걱정을 더한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수강신청을 해 주는 소프트웨어. 계속해서 서버에 수강신청 명령을 전달해 선착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해 준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네트워크 부하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에서 금지하고 있다.

우리 학교(서강대)도 이번 학기부터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을 금지했다. 화면 속에 제시된 알파벳을 직접 키보드로 입력해야 수강신청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학교 공지 때문에 매크로 프로그램은 아예 쓸 생각도 안 했지만, 혹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친구들도 있지 않을까 불안하다.

휴대전화 화면에 ‘10’과 ‘00’이 표시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수강신청 사이트에 로그인한다. 그런데 이런…. 수강신청 화면이 뜨는가 싶더니 하얀 바탕에 텍스트들만 비정상적으로 크게 표시된다. 눈앞이 캄캄하다. 로그아웃을 누르고 재빨리 다시 로그인한다. 다행히 정상적인 화면이 뜬다. 먼저 전공인 영문학 과목을 선택한다. 뒤이어 경쟁이 치열한 경영학과 과목인 ‘회계학원론’과 ‘현대기업윤리’를 선택한다. “아, 이게 무슨 글자인 줄 모르겠어.” 한 여학생 이 수강신청을 위해 입력해야 하는 기울어진 알파벳(매크로 프로그램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잘 알아보지 못해 소리를 지른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계획했던 대로 다음 학기 시간표가 짜졌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취업난 때문에 학점 경쟁이 심화되고 경영학과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양정훈 씨·25·서강대 영문학과 4학년)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대학생들의 경쟁은 막이 오른다. 그들은 조금 더 쉽게 학점을 딸 수 있고, 취업할 때 도움이 되는 수업을 신청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신현길 한국외대 글로벌경영대 명예교수(66)는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경영학부 수업에 인원이 몰려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이 밖에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민법, 형법 등 ‘고시 시험과목’으로 포함되어 있는 수업도 수강신청 경쟁이 치열하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이런저런 속설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학교 컴퓨터실이나 학교 근처 PC방에서 수강신청을 하면 서버 접속이 더 빠르다’는 말이 수강신청과 관련된 대표적인 속설이다. 이 때문에 수강신청이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학교는 전날 밤부터 근처 PC방에서 밤을 새우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동국대 최문규 전산팀 과장은 “학교 근처 PC방에서 수강신청을 하면 유리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PC방도 일반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를 통해 수강신청 서버로 접속된다는 것. 따라서 학생들 생각처럼 단순히 학교 근처에 있다고 해서 수강신청 서버와의 접속 거리가 가까워지거나,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은 아니란 설명이다. 최 과장은 “물론 학내 컴퓨터가 수강신청 서버와 내부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ISP를 거쳐 오는 것보다 약간 빠를 수 있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발전해 그 차이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한재희 인턴기자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