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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박용]중동 ‘코리안 아미’의 추억

입력 | 2012-02-10 03:00:00


박용 산업부 기자

열사(熱沙)의 땅 중동에는 ‘코리안 아미(Korean Army)’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2년 전 중동 출장길에 만난 KOTRA 관계자 A 씨는 “현지인들이 과거 한국 건설근로자를 코리안 아미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새벽부터 체조와 구호로 하루를 시작하고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공기(工期)를 앞당겨 일을 끝내던 한국 근로자들의 근면함에 중동인들이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A 씨는 “현지인들은 지금도 설렁설렁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보면 코리안 아미 얘길 한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은 거저 얻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은 맨주먹으로, 땀과 눈물로 외화를 벌어들였던 선배 기업가와 근로자들에게 큰 빚을 졌다.

1970, 80년대의 코리안 아미는 이제 추억이 됐다. 중동에는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 등에서 온 저임금 근로자가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새 한국 기업도 몰라보게 성장했다. 저임금 노동력이 아닌 첨단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하고 전자 자동차 조선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과 겨루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코리안 아미의 신화는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요즘 대기업에서 과거의 코리안 아미가 설 자리는 많지 않다. 미국의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저서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에서 “경제위기 이후 늘어나는 일자리는 허드렛일을 하는 저임금 일자리와 지식 전문성 창조적 역량이 필요한 고임금 일자리로 양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1세기 코리안 아미의 선택은 당연히 전자(前者)가 아닌 후자가 돼야 한다. 근면과 성실의 DNA에 창의와 혁신, 기술과 지식을 입히고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산업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은 거꾸로다.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s)로 가는 사다리인 대학을 너무 많이 간다고 오히려 탓한다. 고졸 취업자들은 저(低)임금 일자리를 맴돌다 생계형 자영업자로 전락하는 ‘저소득 저숙련의 늪’에 빠져 있다. 실력을 쌓아 괜찮은 일자리로 올라가는 ‘경력 사다리’도 변변치 않다.

대학 진학률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지식기반기업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不姙)형 경제구조’와 대학을 나와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실한 교육시스템에 청년들은 좌절한다. 세계 200위권 대학에 우리 대학 이름은 서너 개에 불과하다.

영세한 자영업자를 일으켜 세우고 고부가가치 부문으로 인력을 옮기는 복안은 내놓지 않고, 있던 일자리를 고졸로 채우는 식의 돌려 막기나 대기업은 골목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엄포만 놔서는 ‘코리안 아미 2.0’으로 업그레이드할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최근 중앙부처 고위관료, 중소기업인과 함께한 모임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신간 ‘다시 일터로(Back to work)’가 화제에 올랐다. 한 참석자는 “새로운 경제와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드는 ‘잡 크리에이션(Job creation)’의 화두를 함께 제시하는 클린턴 같은 정치 리더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선거철마다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하고 일자리 몇 개를 만든다던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빌리자면 “어디 갔어, 일자리 만든다던 사람들 다 어디 갔어∼!”라는 말이 입속을 맴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할 때다.

박용 산업부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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