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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유럽풍의 한남동 ‘꼼데길’ 서울 핫플레이스 급부상

입력 | 2012-02-03 03:00:00

가로수길보다 조용하고 캐주얼한 고급문화 1번지
정통 유럽 맛집-패션 숍마다 트렌드세터-관광객들 북적




▲ 꼼데길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강진역에서 제일기획 사이의 약 700m의 길. 2010년 8월 패션브랜드 꼼데가르송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생기면서 ‘꼼데길’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이태원의 개성과 한남동의 고급스러움이 녹아든 레스토랑의 문화공간. 패션매장이 발길을 붙잡는다.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이 비친 지난달 28일 토요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까지 이어진 도로는 꽉 막혀 있다. 맛집과 옷가게로 가득 찬 이태원은 늘 관광객과 휴일을 즐기려는 젊은층들로 활기차다.

막힌 도로를 지나면 어느새 오른쪽으로는 제일기획, 왼쪽으로는 IP부티크 호텔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뭔가 다르다. 찻길도 사람들의 길도 한산하다.

제일기획과 한강진역 사이의 약 700m. 여기가 요즘 서울에서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꼼데길’이다. 2010년 8월 패션브랜드 꼼데가르송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생기면서 ‘꼼데길’이란 애칭이 생겼다. 이태원과 이어져 있지만 행정구역상 용산구 한남동이다. 장동건이 100억 원대 건물을 사고, 삼성계열사 건물이 늘고 있어 화제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태원처럼 캐주얼하면서 한남동처럼 고급스러운 곳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문화가 된다.

그들은 왜 한남동에 왔을까

부자피자의 ‘디아볼라 꼰 올리베 네레’.

길은 한산해도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우디 자동차전시장 골목에 자리한 ‘피체리아 디부자(Pizzeria d’Buzza)’. 쉽게 ‘부자피자’로 불린다. 부자의 뜻은 말 그대로 ‘리치(Rich)’이다. 토요일 오후 2시 40분이었는데 앞에 4팀이 더 있었다.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주차도 어려웠다. 딱 세 대만 세울 수 있는 매장 앞 공간은 이미 다 찼다. 그냥 딴 데 갈까, 순간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한남동 일대에 사는 회장님들이 찾는다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박용만 ㈜두산 회장은 트위터에 “장작 화덕에 굽는 피자인데 맛있네요”라고 썼다. 결국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었다. 부자피자는 지난해 11월에 문을 열자마자 입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몰린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오후 3∼5시까지의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 오후 3시 50분쯤 되자 자리가 났다고 전화가 왔다. 딱 한 시간 10분 기다린 셈이다.

부자피자의 이일주 셰프는 3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 꼭 해보고 싶었던 피자집을 열기까지 말이다. 골목 안에 있지만 대로에서도 쉽게 보이는 이곳은 원래 노부부가 운영하던 작은 슈퍼마켓이었다. “느낌이 왔어요. 남산 자락에 숨겨져 있는 듯하면서도 누구나 찾아오기 쉬운 곳. 이탈리아 북부 국경도시 쿠르마유르에서 만난 피자집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는데 이곳 분위기와 비슷했죠.” 3년 동안 슈퍼마켓 노부부에게 가게 자리를 달라며 도가니를 선물로 드리기도 하고, 함께 TV도 보며 진심을 전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피자전문학교를 졸업한 이 셰프는 6개월 동안 피자만 먹으며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기도 했다. 그는 “이탈리아 ‘피체리아(피자집)’는 서민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한 끼를 먹는 곳인데 한국에서는 고급 레스토랑 음식으로 여겨져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곳은 고급 레스토랑 피자에 비해 가격이 착하다. 마르게리타 피자가 8800원. 모양도 동그랗지 않고 비대칭인 데다 화덕에 구워진 탓에 끝이 타 있을 때도 있다. 채소 과일을 제외한 웬만한 재료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공수하고 나폴리식대로 만든다. 저녁에는 상그리아나 모히토 한잔과 피자를 곁들이는 바(bar)로 변한다. 부자피자를 운영하는 트라이비 푸드의 오주영 실장은 “한남동에는 진정한 피체리아 문화를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많다”며 “이태원에는 관광객이 많지만 이곳은 서울에 사는 외국인이 더 많다. 한남동을 찾는 한국 분들의 연령대도 이태원보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꼼데길에서는 고급 프렌치 요리와 새로운 퓨전요리, 신선한 패션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위쪽부터 고기 육즙을 그대로 간직하도록 익힌 더 스파이스의 안심스테이크, 그릴에 구운 꽁치와 올리브, 케이퍼 등이 곁들여진 비키친의 ‘꽁치 파스타’, 꼼데가르송 매장 1층의 ‘플레이’ 라인. 더 스파이스, 꽁치 파스타, 제일모직 제공

꼼데가르송 매장 건너편에 위치한 레스토랑 ‘더 스파이스’도 비슷한 이유로 2010년 5월 한남동에 왔다. 정통 현지의 맛과 문화를 이해할 곳으로 본 것이다. 더 스파이스 김중근 대리는 “이태원은 젊은층이 많이 다니고 부산스러우면서 개성이 있다. 한남동은 그런 이태원과 가까운데 느낌이 전혀 다르다”며 “총주방장인 데런 보안 셰프의 스타일은 한국적이지 않다. 한국에서 만나는 정통 유럽의 맛을 낸다”고 말했다. 더 스파이스는 코스 중심의 정찬이 주를 이룬다. 점심은 코스는 2만5000원, 3만9000원이고 저녁은 5만8000원, 6만5000원 수준.

삼원가든의 외식전문기업 SG다인힐에서 운영하는 ‘붓처스컷’과 ‘봉고’도 보기 드문 음식을 한남동에서 시도했다. 스테이크가 주력인 붓처스컷은 1차 에이징(Wet Aging) 후 다시 드라이 에이징(Dry Aging)하는 숙성법을 선보인다. 스페인 타파스바인 봉고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코치니요(새끼돼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새끼돼지가 엎드려 있는 모양새 그대로 접시에 나와 처음 보는 이는 아연실색하지만 정통 스페인 맛을 그리워하던 사람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다.

쇼핑도 갤러리가 되는 곳

“꼼데가르송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전형적인 것을 싫어해요. ‘청담동=패션’에서 벗어난 남다른 곳, 그게 한남동이었죠.”

지난달 30일 꼼데가르송 1층 로즈 베이커리에서 제일모직 김하리 2부문마케팅팀 차장을 만났다. 로즈 베이커리는 프랑스 유기농 빵과 음료를 파는 곳이다. 프랑스 꼼데가르송 매장에도 1층에는 로즈 베이커리가 있다. 레이 가와쿠보는 늘 전형적인 명품 거리에서 벗어난 곳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고 그곳을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만들어 왔다고 한다. 로즈 베이커리도 그녀의 철학과 맥을 같이하는 곳.

명품 브랜드 매장이라고 겁낼 필요가 없다. 1층에서 차를 마시며 10만 원대 티셔츠도 있는 ‘플레이’ 라인을 구경하면 되니까. 김 차장은 “10만 원대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다양한 12개 라인이 있어 누가 와도 자기에게 맞는 제품을 찾아보고 둘러볼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다.

좀 더 용기를 내어 2층으로 올라가보자. 5층까지 있는 거대한 꼼데가르송 매장은 쇼핑몰이기보다 전시장 같다. 층과 층 사이는 계단이 아닌 터널 형식의 오르막길로 돼 있다. 터널마다 재미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중국인 패션 피플도 많이 찾는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꼼데가르송 플래그십스토어라 제품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홍보용으로 걸어놓은 수천만 원짜리 꽃장식 드레스도 중국인이 사갔다고 한다. 이번 춘제 기간에 중국인 매출 비중이 15∼20%에 달했다.

꼼데가르송 옆에는 하얀 건물 앞 대형 레고 소년이 눈에 띈다. 건축가 유이화, 패션디자이너 박수우 부부의 오가닉 퓨전 레스토랑 ‘비키친’이다. 노시훈 매니저는 “의식주를 한 공간에서 경험하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식당과 패션 숍(비숍)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뉴도 독특하다. 꽁치 파스타, 멍게 크림파스타, 갈비 리소토 등 이탈리아 요리에 한국음식을 더했다. 점심 세트 2만2000원에 수프, 멍게 크림파스타, 디저트를 먹어봤다. 멍게와 크림소스의 조합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꼼데길의 문화공간은 더 늘어난다. 이미 전문 공연장 ‘블루스퀘어’가 지난해 문을 열었다. 또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디자인한 현대카드의 복합문화공간이 2013년에 들어선다. 김태형 현대카드 홍보팀 과장은 “복잡한 도심보다 문화공간을 이용하기 좋은 분위기에다 외국인들과도 함께 소통할 수 있어 한남동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김슬기 인턴기자 숙명여대 경영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