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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을 들며/전수림]막걸리 한 사발에 젓가락 장단 맞추시던 아버지

입력 | 2012-02-02 03:00:00


전수림 수필가·구리문인협회 부지부장

날이 춥다. 나는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1960, 70년대 모두가 힘들고 고단하던, 그러나 가슴 따뜻함이 물씬 풍기는 우리의 자화상 같은 영화를 골랐다.

그 영화엔 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허름한 술집에서 상다리가 부서져라 젓가락 장단을 맞추고, 신명나는 노래를 불러 젖히던 장면들이 아스라이 스쳐갔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데는 군부대가 마을을 감싼 아늑한 곳이었다. 작은 마을에 군인들을 상대하는 술집이 여럿 있었던 것도 생각난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동네에서 운영하는 구판장이나 허름한 대폿집에서 고단함을 달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도록 아버지가 들어오시지 않자 엄마는 내게 아버지를 찾아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나는 아버지가 가실 만한 곳을 찾아가 봤다. 그렇지만 그날따라 아버지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되돌아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여럿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들으니 아버지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한이 서린 듯한 구성진 목소리를 가졌다.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서글프고 가슴 아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가 반쯤 열린 창문 밑에 가만히 섰다.

방안은 흥과 열기로 가득했다. 궁금했다. 방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창문이 높아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디딤돌을 놓고 까치발을 들고서야 간신히 안을 엿볼 수 있었다. 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목청껏 불러 젖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 얼굴 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넘치도록 행복한 얼굴이다. 뭘까. 나는 잠시 가만히 노랫소리를 들었다. 비록 어른들의 세계는 알지 못하지만 뭔지 모를 애잔함이 뭉클하게 올라왔다. 어찌 해야 할까. 나의 갈등과는 상관없이 노래는 계속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도 모르게 “엄마! 아버지 없어!” 하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겠다고 작심했던 것도 아닌데 얼떨결에 튀어나온 말이다. 그날 밤늦도록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는 우리 집 백열전구까지도 밤새 흔들어댔다.

다음 날 새벽 비질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깼다. 문틈으로 내다보니 밤새 젓가락을 두드리던 아버지가 어느새 마당을 쓸고 있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숙취 뒤에 맛보는 뜨끈한 해장국 같은 젓가락 장단, 그것은 우리 민족의 타고난 민족성이기도 하다. 때로는 터질 것 같은 함성으로, 때로는 한을 삭이듯 절제된 음률로 장단을 맞추던 우리네 젓가락 장단. 요즘 아무리 기계음이 발달하고 노래방 문화가 깊게 들어와 있다 하더라도 길게 또는 짧게, 세게 또는 부드럽게, 순간순간 감성대로 자유자재로 장단을 맞추던 그 맛에 비할까. 막걸리 한 사발이면 아무 악기 필요 없이 그만인 우리네 그것.

바람 불고 눈발이 성글게 내리는 날. 막걸리 한 대접 들이켠 어른들의 퇴폐쯤으로 여겨졌던 장단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오늘, 막걸리 좋아하는 지인을 불러 빈대떡에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 할까 싶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런 아날로그적인 사소한 것들이 그리운 이유다.

전수림 수필가·구리문인협회 부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