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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444연승… ‘휠체어 퀸’은 오늘도 달린다

입력 | 2012-01-30 03:00:00

호주오픈 ‘휠체어 테니스’ 베르기어, 女단식 우승
휠체어 농구대회 유럽우승도… 5월 서울대회 참가




44연승을 질주하며 호주오픈테니스 휠체어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에스더 베르기어가 경기 도중 강한 근육을 앞세워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고 있다. 베르기어는 2003년 1월 이후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휠체어 테니스의 여왕이다. 호주오픈테니스 홈페이지

불편해 보이는 휠체어에 몸을 실은 그에게 사각의 테니스 코트는 편하기만한 무적의 무대다. 지난 10년 동안 져 본 일이 없다.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최강의 지배자로 불릴 만하다. 29일 호주 멜버른에서 끝난 호주오픈테니스 휠체어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에스더 베르기어(31·네덜란드).

베르기어는 결승에서 아니크 판쿠트(네덜란드)를 단 한 게임도 내주지 않으며 2-0(6-0, 6-0)으로 이겼다. 이로써 그는 2003년 1월 30일 시드니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다니엘라 디 토로(호주)에게 패한 이후 444연승을 질주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 기록은 1980년대 스쿼시에서 자한기르 칸(파키스탄)이 세운 555연승 이후 스포츠 최다 연승 기록 2위에 해당한다. 2004년 8월부터 2006년 10월까지는 250세트 연속 승리의 대기록도 세웠다.

메이저 대회에서 20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그는 8월 런던 패럴림픽에서 4회 연속 단식 금메달을 노린다. 복식을 합하면 역대 패럴림픽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1999년부터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그의 통산 승률은 96%를 넘는다. 베르기어는 5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할 계획이라 국내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선수권에서도 11회 연속 정상에 섰다.

테니스 같은 공놀이를 즐겼던 베르기어는 7세 때 수영을 하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에 정신을 잃었다. 척추 주위의 혈관이 약해 뇌까지 이르는 혈액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 속에 생명까지 위태로웠다. 3차례 대수술을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대신 9세이던 1990년부터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재활을 위해 농구, 배구, 테니스를 배우다 휠체어 농구 대표팀에 발탁돼 1997년 유럽 선수권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1998년 단체 운동보다는 개인 종목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테니스에 집중한 그는 타고난 운동신경에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집념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장애인 누구가 아닌 에스더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었어요. 나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므로 어떤 난관도 허물 수 있어요.”

베르기어는 2010년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 휠체어에 앉은 누드 사진을 찍어 ESPN 매거진 표지 모델로 나섰다. 자선재단을 만들어 장애인 돕기와 재활에도 앞장서고 있다. 2002년과 2008년에는 올해의 장애인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골프와 스키가 취미인 베르기어는 “장애가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스포츠는 내게 그런 위대한 인생을 줬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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