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장성 김경란 씨의 두 ‘복덩어리’ 자랑
“속이 거시기헝께∼” 베트남에서 시집온 응우옌티투짱 씨(오른쪽)와 손아래 동서 함티베넛 씨(왼쪽)가 설음식을 장만하려고 시어머니 김경란 씨와 함께 19일 전남 장성군 장성읍 시장을 찾았다. 튀김을 먹고 있는 고부간 표정이 시골 장 풍경에 걸맞게 정겹다. 장성=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9일 오전 전남 장성군 장성읍 황룡시장. 두툼한 겨울옷을 차려입은 베트남인 응우옌티투짱 씨(25)와 함티베넛 씨(24)가 시어머니 김경란 씨(70)와 설을 앞두고 장을 보러 나왔다. 시어머니 팔짱을 끼고 시장을 둘러보던 두 며느리는 생선가게에 들렀다. “아짐(아주머니) 쬐끔(조금) 깎아주쇼, 잉.” 투짱 씨가 병어를 들어 보이며 전라도 사투리로 값을 흥정했다. 옆에 있던 베넛 씨는 “조기도 샀응께(샀으니까) 좀 깎아주쇼”라며 거들었다. 김 씨는 두 며느리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베넛 씨는 배가 출출했는지 “어머니, 우리 튀김 먹고 가요”라며 시어머니 손을 끌었다. 김 씨는 “아따, 너는 뭐가 그리 먹고 싶은 게 많냐”며 눈을 곱게 흘겼다.
○ 베트남에서 굴러온 복덩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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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한마을에서 산다. 삼형제를 둔 김 씨는 한국 여성과 결혼한 둘째 아들 집에서 지낸다. 김 씨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베트남 며느리들이 복덩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깨가 으쓱해진다고 했다. 웃음이 많고 성격이 활달한 맏며느리는 동네 어른들이 아프면 오토바이에 태우고 읍내 병원을 찾고 동네 허드렛일도 도맡아서 한다. 김 씨는 “큰며느리가 시집올 때 뭔 일을 할까 싶었는데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부녀회장 시켜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살림꾼이 다 됐다”고 자랑했다. 투짱 씨는 베넛 씨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탓에 집안에서 통역사 역할도 한다. “며느리 둘이 베트남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내 흉을 보는 것 같어.” 설음식 장만을 하던 김 씨가 한마디하자 투짱 씨는 웃으면서 “그런 일 없당께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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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엔 고스톱 즐기는 베트남댁
두 며느리는 명절 때면 온 가족이 모여 음식 장만하고 고스톱을 치며 노는 게 즐겁다고 했다. 투짱 씨는 3년 전에 고스톱을 배웠는데 요즘엔 가끔 돈을 따기도 한다. 베넛 씨는 “처음에는 형님이 딴 돈을 돌려줬는데 요즘은 버릇된다며 안 준다”며 웃었다. 두 며느리는 처음엔 음식 만드는 게 서툴렀지만 이제는 김치찌개나 나물무침은 물론이고 제사 음식까지 문제없이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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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짱 씨는 6개월 전 농가주택자금을 대출받아 마을에 새집을 지었다. 6년간 셋방살이를 끝내고 입주하던 날 투짱 씨는 남편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남편 최 씨는 “아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실을 쓸고 닦는지 모른다. ‘빨리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며 휴대전화도 오는 것만 받고 해진 운동화까지 신고 다녀 안쓰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이제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빚도 갚으려면 아껴 써야죠.” 애들 걱정하고 집안일을 꼼꼼히 챙기는 투짱 씨는 어느덧 ‘한국 아줌마’가 다 됐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