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H&M이 선보인 ‘H&M 컨셔스 파티 컬렉션’은 유기농 면, 재생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들었다 H&M제공
새해를 맞으면 늘 지난 한 해 발자취를 돌아보며 잘한 일 못한 일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어느 때보다도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너그럽고 자비로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요즘은 패션을 통한 윤리와 자비로움에 대한 개념이 바뀐 듯하다. 예전 같으면 바자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목 중 하나가 의류였다면 이제는 지나치게 흔해져 아파트 단지 곳곳마다 의류수거함에 넘쳐난다. 값싸고 패셔너블한 의류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의류가 하나의 소장품이라기보다 한때의 유행을 반영하는 소모품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윤리와 자비로움에 대한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심각한 공해와 환경오염, 자연생태계의 파괴 등으로 1980년대 말부터는 에콜로지(ecology·생태학)풍의 디자인이 유행했다. 에콜로지 패션의 특징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옷 모양을 내기 위해 천연 섬유를 주로 사용하고 천연 염료로 염색하며 자연스럽고 편안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속 가능한 개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친환경적인 패션이 자연에 귀의한 종교인이나 시위하는 환경운동가의 전유물이기를 거부한다. 멋지고 스타일리시하지만 알고 보면 환경과 친구 할 만큼 가격이 되는, 말 그대로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친환경적) 소재를 쓰고 공정을 거친 후에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소비를 강조한다.
한 벌의 원피스가 있다고 치면 페트병을 가공한 재생섬유에 다림질이 필요 없게 구김 방지 공정을 거쳐서 다리미를 사용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친환경 염색 공정을 거쳐 세탁할 때의 폐수 오염도를 줄인다. 또 공정무역을 통한 면을 사용할 경우는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받게 하거나 의류 판매의 수익금 일부가 환경보호단체로 기부돼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실천을 하게 한다.
실제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실천은 우리 선조들이 이미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남는 천 조각을 모아 화가 몬드리안 뺨치게 만드니 색과 면의 조화를 창조했으며, 쑥쑥 크는 아이들에게는 두어 치수 큰 옷을 입히면서도 예쁜 색단추를 달아 폭을 조정하게 하거나 밑단은 두툼하게 걷어 어느 스타일리스트 못지않게 맵시를 강조했다. 못 쓰는 스웨터는 올을 풀어 주전자의 증기를 한번 쏘인 후 새롭게 가족들의 목도리며 장갑이며 모자로 변신시키는 마법도 부리지 않았던가.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패션을 강요하기보다는 패션의 초심이 무엇인지 알기를 권하고 싶다. 패션은 입고 싶어야 한다. 그래야 재생해서 더 이상 쓸모없는 새로운 쓰레기가 또 다시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