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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잊을 수 없는 ‘그날’]스릴러 소설 ‘7년의 밤’ 쓴 정유정 작가의 7월 16일

입력 | 2011-12-28 03:00:00

소설속 ‘공포의 댐’ 눈앞에 나타나 깜짝




소설가 정유정의 장편 ‘7년의 밤’은 ‘세령호’라는 음습한 가상의 댐을 무대로 두 남자의 대결을 팽팽하게 그렸다. 세령호의 실제 모델인 전남 순천시의 ‘주암댐’. 한국수자원공사 주암댐관리단 제공

베스트셀러가 된 날도, 1억 원의 영화 판권 계약을 맺은 날도 아니었다. 장편 ‘7년의 밤’의 소설가 정유정은 “작품 속 세령호를 현실에서 직면한 날이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겸 씨 제공

아침부터 비가 퍼부었다. 낮게 드리운 검은 구름은 지표면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시야를 가리는 희뿌연 안개는 댐으로 가는 길을 좀처럼 내주지 않았다. 자주 드나들던 길을 이날만은 돌고 돌아 가야 했다. 기괴하고 음침했다.

댐에 다다랐을 때, 5개의 모든 수문은 입을 열고 거대한 폭포처럼 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댐의 모습은 장엄하고 충격적이었다. 짧은 탄식이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왔다. ‘아! 내가 소설에 쓴 댐하고 똑같구나.’

올해 한국 문단은 40대 새 스타 작가를 배출했다. 장편소설 ‘7년의 밤’(은행나무)을 펴낸 소설가 정유정(45). 3월 출간된 ‘7년의 밤’은 21만 부가 판매되며 그의 이름 석 자를 문단만이 아니라 대중의 뇌리에도 확실히 새겼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장르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았고, 출판인들의 모임인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대상 수상작으로도 선정됐다.

작품은 심야에 한 소녀를 승용차로 치고 우발적으로 호수에 유기한 뒤 점차 미쳐가는 사내, 그리고 딸을 죽인 범인의 아들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피해자 아버지의 숨 막히는 대결을 그렸다. 사고 당시와 7년이 흐른 뒤의 현재를 넘나들며 밀도 있게 전개되는 이 스릴러 소설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작가가 건설한 거대한 ‘세령호’ 댐이다. 사건의 시발점인 교통사고가 댐의 우회도로에서 벌어졌고, 범인을 둘러싼 팽팽한 조사가 펼쳐지거나 수문이 열려 마을이 수몰되는 아비규환이 펼쳐지는 곳도 세령호다.

세령호 댐의 실제 모델은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 있는 주암댐. 작가는 2년여의 구상과 집필 기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 이곳을 찾았지만 소설 속 세령호처럼 ‘음침하고 기괴한’ 댐의 모습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출간 넉 달여가 지나 한 방송사 인터뷰를 위해 주암댐을 찾았을 때 그는 ‘세령호의 환영’을 봤다. 7월 16일이었다.

“잔뜩 낀 먹구름 탓에 한낮인데도 밤처럼 컴컴하고, 폭우에 수문이 모두 개방돼 물이 콸콸 쏟아졌지요. 그렇게 살벌한 모습의 댐을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제가 상상속으로 만들어낸 세령호가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습니다.”

작가가 한 해를 보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베스트셀러가 된 날도, 1억 원의 영화 판권 계약을 맺은 날도 아니었다. 자신이 만든 가상의 세계가 현실로 구체화된 장면을 본 순간 작가는 큰 충격과 감흥에 빠져들었다.

“음산하고 살벌한 세령호와 너무 똑같아서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 기뻤어요. 제가 그만큼 작품 속에서 호수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 같아서요.”

중환자실 간호사 출신인 작가는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문학상을, 2009년 ‘내 심장을 쏴라’로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7년의 밤’은 수상 타이틀 없이 출간해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봐줄까, 내심 걱정이 많았죠. 호평이 많아서 기뻤지만 당장 차기작이 걱정이군요. 다음번에는 ‘작살나지’ 않을까, 우려가 들었어요.”

2년에 한 번꼴로 장편을 내온 작가는 10월 차기작 집필에 들어갔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 한 달 넘게 칩거해 ‘이마를 쥐어짜며’ 이미 초고의 3분의 2를 마친 상태.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돌아 폐쇄한 한 도시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팽팽하게 그렸다.

“아직 보충취재도 더 해야 하고, 제 스타일이 쓰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하기 때문에 내년은 작품 보강에만 매달려야 할 것 같아요. 2013년 3월쯤에는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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