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스포츠마케팅팀 입사한 ‘퍼펙트 테란’ 서지훈 씨
잘나가는 프로게이머에서 스포츠마케터로 변신한 서지훈 씨가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 산책로에서 육상 스타트 자세를 취하며 힘찬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서 씨는 2000년대 초반 ‘퍼펙트 테란’이란 칭호를 얻으며 e스포츠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의 성공기는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됐다. 연예계 한류 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도 얻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3, 4년은 충분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주위의 평가였다.
하지만 서 씨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당당히 CJ그룹 스포츠마케팅팀 입사에 성공해 프로게이머 출신 스포츠마케터 1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22일 본보를 통해 이 사실을 처음 밝힌 서 씨는 “그동안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짧게 반짝 하다 잊혀지기보다는 오랫동안 e스포츠를 위해 일하며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들은 십중팔구 은퇴 뒤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주로 10대에 전성기를 보내다 보니 정규 수업을 받기 어렵다. 고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사회성도 부족하다. 어린 나이에 부와 인기를 경험한 탓에 은퇴 뒤 방황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서 씨는 “1세대 프로게이머로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일반 대기업 초봉(3000만 원 기준)의 두 배 이상 되는 플레잉코치직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도전에 나선 이유다”라고 말했다.
특채 형식으로 입사한 서 씨는 CJ그룹 스포츠마케팅팀에서 e스포츠, 골프, 카레이싱 등을 담당하게 된다. 공채 때마다 유학파 등 우수 인재 200명 이상이 몰리는 인기 부서다. 서 씨는 1차 실무 압박 면접과 2차 임원 면접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CJ그룹 인사팀 이종기 상무(45)는 “처음에는 게임만 한 친구라는 편견을 갖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면접을 해보니 스포츠마케팅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할 적임자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서 씨는 프로게이머로는 드물게 대학(아주대 정보 및 컴퓨터공학부)을 졸업했다.
인터뷰 말미가 되자 프로게임단 유니폼이 아닌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서 씨는 “10년쯤 뒤에는 영화 ‘머니볼’의 빌리 빈 단장처럼 작은 가능성을 크게 키워주는 스포츠마케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지훈 씨의 이야기는 채널A의 ‘토요뉴스’(24일 토요일 오후 9시)를 통해 보도된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