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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일제강점기 민족의 힘 기른 文盲퇴치 운동

입력 | 2011-12-03 03:00:00


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인 1933년 펴낸 문자보급 교재 ‘한글공부’ ‘신철자편람’ ‘일용계수법’이 문화재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청은 1일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 소장된 이들 교재와 조선일보가 1934년 발간한 ‘문자보급 교재’ 등을 문화재로 등록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언론사의 문자보급운동은 우리나라 독립에 크게 기여하고 민족정신을 함양했다”며 “이들 교재는 언론사가 국민 계몽에 기여한 구체적 증거물이므로 문화재로 등록해 연구 관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

“어찌하면 우리는 하루 밧비 이 무식의 디옥에서 벗어날가. 어찌하면 이 글장님의 눈을 한시 밧비 띄어볼가… 방방곡곡에 문맹(文盲) 타파의 횃불을 놉히 들가 합니다.” 문맹률이 90%에 육박하던 1928년 3월 16일 동아일보가 문맹퇴치운동인 ‘글장님 없애기 운동’을 시작하며 실은 기사다. 전국에 포스터를 내걸고 30여 명의 명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일제가 행사 사흘 전에 금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31년부터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의 농민계몽 운동에서 착안한 ‘브나로드운동’을 주도하며 문맹 퇴치와 한글 보급에 힘을 쏟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될 때까지 4년간 학생들을 주축으로 5751명의 ‘계몽대원’을 전국에 보내 9만7598명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한글공부’ 등 210만 부의 한글 교재를 만들어 배부했다. 민족어의 위기를 민족의 위기로 인식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보존하기 위한 ‘문화독립 운동’의 횃불을 높이 든 것이다.

1920년 ‘문화주의’를 사시(社是)로 내걸고 출범한 동아일보는 창간 열흘 만인 그해 4월 11일부터 사흘에 걸쳐 ‘조선인의 교육 용어를 일본어로 강제함을 폐지하라’는 사설을 1면에 게재했다. 그 후 일제가 여러 차례 ‘조선교육령’을 통해 조선어 말살을 시도할 때마다 정면으로 맞서 저항했다. 일제는 1940년 8월 10일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할 때까지 20년 동안 무기정간 4회, 판매금지 63회, 압수 489회, 기사 삭제 2434회 등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가 이민족 지배하의 엄혹한 여건에서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라는 사시를 실천한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당시의 지면과 논조를 일방적으로 왜곡 비판하는 일부의 시각은 편협하다. 동아일보가 일제하에서 폐간될 때까지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민중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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