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 심한 날씨에 패션-식품 소비패턴도 변화무쌍… 기후변화, 유통 지도를 바꾸다
올여름(6∼8월) 현대백화점의 선글라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9% 늘어나는 데 그쳐 지난해 매출신장률(19.5%)에 크게 못 미쳤다. 하지만 가을에 접어들자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9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선글라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1% 증가해 1년 전 증가율(12.8%)의 두 배 가까이 됐다. 정민영 현대백화점 잡화팀 바이어는 “올해는 기록적인 폭우가 계속된 여름보다 맑고 더운 날씨가 이어진 가을에 야외활동이 많아진 것이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형마트 식품매장에선 농수산물의 대체재로 각종 가공식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 떼었다 붙였다… 트랜스포머 패션
여름에 비오는날 많아… 선글라스 가을에 더 인기(왼쪽), 농수산물 공급 들쭉날쭉… 일단 물량 확보해 가공(가운데), 의류 판매, 기온에 좌우… 업계 ‘탄력 생산’ 체제로(오른쪽).
롯데백화점의 아웃도어 선임상품기획자인 강우진 과장은 얼마 전까지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다. 최근 5년간 백화점 판매신장률 1위를 고수해 온 아웃도어의 매출 성장세가 갑자기 마이너스로 돌아섰기 때문. 이달 들어 18일까지 아웃도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감소했다.
이는 모두 날씨 탓이었다. 올 5월 강 과장은 지난해 일찌감치 한파가 찾아와 거위털 점퍼가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매진된 기억을 떠올렸다. 주요 업체와 상의해 물량을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렸다. 하지만 이달 들어 19일까지 서울의 평균 기온은 13.6도로 지난해보다 6도나 높았고 두꺼운 외투를 찾는 수요는 실종됐다. 판매율은 20%가량 줄었다.
트랜스포머 부츠 따뜻한 양말을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에이글’의 ‘트랜스포머’형 레인부츠. 롯데백화점 제공
이처럼 반응생산비중이 높아지자 인건비가 싼 제3국에 생산을 맡기던 업체들이 국내 생산물량을 늘리는 흐름도 포착되고 있다. 영캐주얼 A브랜드 관계자는 “제3국에서 기획생산을 하던 때보다 이익률은 줄었지만 효율적인 판매가 가능해져 전체적으로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반응생산비율을 2007년 28%에서 올해 41%로 올린 데 이어 연간 상품 기획 횟수도 같은 기간 8회에서 24회로 늘렸다.
○ 냉동, 건조, 발효식품 늘어
대형마트와 백화점 식품관에서는 말리거나 얼린 가공식품의 비중이 최근 2년 새 크게 늘었다. 한반도 일대 수온 변화와 이상기온으로 농수산물 수확량이 일정치 않아졌고 이로 인해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과일값, 배추값 파동이 일었던 지난해 가공식품 판매가 급등하면서 올해까지 신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생산이 집중되는 수확기에 최대한 물량을 확보한 뒤 가공한 상품을 대체재로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의 올해 냉동과일 매출액은 지난달 말까지 89억9100만 원으로 2010년 한 해 매출인 37억9100만 원의 2.4배에 이른다. 건과일 매출액도 75억2700만 원으로 지난해 한 해 매출 71억9900만 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두부와 냉장 생과일주스 등의 판매량도 늘었다. 두부는 생선이 한반도 일대 수온 변화 등으로 어획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상승하자 단백질을 공급할 대체재로 꼽혀 매출이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5일 현재 홈플러스의 두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 늘었다. 올해 봄철 냉해와 여름철 긴 장마로 과일의 작황 상태가 나빠져 가격이 치솟으면서 과일 대신 주스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년 대비 0.7%에 그친 냉장주스 매출 신장률은 올해 10.7%로 뛰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