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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음식이야기]순대

입력 | 2011-11-17 03:00:00

장터 중심으로 발달… 한국의 대표적 ‘거리음식’




순대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거리음식이다.

값싸고 맛도 좋은 데다 대중적이고 서민적이어서 누구나 즐겨 먹는다. 순대는 옛날에도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었을 것 같다. 사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순대와 순댓국밥은 모두 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경기 용인의 백암 순대, 충남 천안의 병천 순대, 경북의 칠곡 순대 등이 모두 예전에는 장터였거나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주로 장터나 주막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식이다.

하지만 순대의 역사를 보면 뜻밖의 사실이 많다. 고대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했던 음식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우리 토종음식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북방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 순대가 있다.

순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달한 음식이다.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동물의 창자에 고기와 야채, 혈액 그리고 양념을 채워서 먹거나 보관했는데 동양에서는 순대로 진화했고 서양에서는 소시지로 발전했다.

순대와 관련된 동양의 첫 기록은 기원전 7세기 이전의 노래를 엮은 ‘시경(詩經)’에 보인다. “훌륭한 요리로 곱창과 순대를 준비했다”는 구절이다. 손님을 맞아 융단을 깔고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니까 손님 접대를 위해 장만한 음식이다.

원문에는 갹(I)이라는 글자를 썼는데 북송 때 사전인 ‘집운(集韻)’에 고기를 잘라 창자를 채운 후 구운 것이라고 풀이했으니 동북아시아에서 먹는 순대의 원형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순대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에서도 순대는 아무 때나 먹는 것이 아니라 잔칫날이나 손님이 왔을 때처럼 특별한 날에 준비했던 귀한 음식이었다.

또 순대는 제사에 쓰는 음식이었다. ‘연산군일기’에 “식용으로 쓸 돼지창자는 전생서에서 기른 것으로 쓰라”는 연산군의 지시가 보이는데 전생서(典牲署)는 제향에 쓸 동물을 별도로 길렀던 곳이다. 또 ‘제물등록(祭物謄錄)’ ‘함흥본궁의식(咸興本宮儀式)’ 등 각종 제례 관련 문헌에도 소, 돼지, 양의 창자를 사용했다고 나오니 거기에 순대가 빠질 수 없다.

순대가 제사음식이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청나라 황실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만주족 황실의 제례의식을 기록한 ‘만주제신제천전례(滿洲祭神祭天典禮)’에 제사를 지낸 후 돼지창자에 선지를 채워 쉐창(血腸)이라는 순대를 만들어 음복을 한다고 적혀 있다.

순대는 고대에도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다. 순대 요리법은 6세기 때 농업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나온다. 양의 창자를 잘라 깨끗이 씻고 잘게 썬 파와 소금, 마늘, 후추 등을 섞어 채운 후 먹으면 맛있다고 했다.

제민요술에는 순댓국도 보인다. 된장과 쌀뜨물을 풀어 끓인 물에 순대를 넣고 파, 생강, 마늘, 산초 등을 넣은 후 소금과 식초를 넣어 먹는다고 했으니 영락없는 순댓국이다.

우리 문헌에는 순대라는 한글 이름이 19세기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 나오지만 17세기 ‘음식디미방’에 개창자(犬腸)로 순대를 만들었다는 기록과 18세기 ‘증보산림경제’에 소창자를 삶은 우장찜(牛腸蒸)이 보인다.

동물뿐만 아니라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등도 있으니 예전부터 순대를 이용한 음식이 다양하게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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